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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북리뷰 _homo eruditio #12

by 방자
사랑의 기술 _ 에리히 프롬 / 1976 / 문예출판사

지인 중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이가 있다.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여행 동반자로 데리고 오면서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잠시 떨어져 있는 여행지에서 『사랑의 기술』을 읽으며, 익숙했던 사랑의 감정이 고요한 그리움과 성찰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평소 같으면 넘겼을 문장들이 이곳에서는 더 깊이 가슴에 남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크게 영감을 얻었던 버트란트 러셀의 "결혼과 도덕"이 생각났는데, 러셀과 프롬은 그들의 시대에는 둘 다 꽤 진보적 인사로 불렸고 철학적으로 사랑과 결혼을 다루고 있지만 그 입장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러셀이 사랑을 '인간 욕구의 자연스러운 해소'로 보고 결혼 제도가 인간의 감정과 성을 억압하는 제도로서 문제를 가진다고 비판하였다면 프롬은 사랑을 '수련해야 하는 삶의 기술'로 보고, 사랑이 상품화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둘 다 "진짜 사랑을 위해 사회와 자기 자신을 바꿔야 한다"라고 보았지만, 프롬은 개인의 수련을, 러셀은 제도의 개혁을 더 강조했다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나는 러셀과 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러셀의 시각에 공감했던 이유는, 제도나 의무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친밀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관계 속에서 ‘자유’와 ‘진실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 역시 사랑을 숙고하고 성숙한 사랑을 하는데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좋은 사람들과 두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그 기회는 내가 만들어야 생기겠지?




책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며, 배우고 수련해야 하는 능동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프롬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이라고 말한다. 즉, 잘 사랑하는 법은 직업이나 예술처럼 연습이 필요하며, 단순히 ‘좋은 상대를 만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책에서 남겨 두고 싶은 내용을 정리 & 요약했다.


성숙한 사랑의 4요소

진정한 사랑은 다음 네 가지 요소를 내포한다.

배려: 상대를 위한 적극적 관심

책임: 타인의 필요에 응답하려는 자세

존경: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

지식: 상대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의 유형들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형제애적 사랑: 인간 전체를 향한 공감

모성적 사랑: 조건 없는 수용과 보호

성애적 사랑: 강렬한 결합 욕구, 하지만 미성숙하면 소유욕으로 변질됨

자기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건강한 존중

신에 대한 사랑: 궁극적 의미를 향한 갈망


현대 사회가 만든 사랑의 착각

우리는 ‘사랑’ 자체보다 사랑받기 위한 조건(매력, 능력, 성공)에 더 몰두한다.

상업주의는 인간관계마저 거래적 사고로 오염시켰다.

진짜 사랑은 고독, 집중, 자기를 직면하는 용기 있는 삶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인상 깊은 구절

무엇인가를 위해서 일하고, 무엇인가를 키우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며 사랑과 노동은 불가분의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노동의 대상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일하기 마련이다. - P.49

사랑은 성적 만족의 결과가 아니며, 성적 행복은 오히려 사랑의 결과다. - P.130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신 집중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실행해야 한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피하지 말고 서로 친밀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 P.165

인간이 경제적 기구에 이바지하지 않고 경제적 기구가 인간에게 이바지해야 한다. 인간은 기껏해야 이익을 나누어 갖는 데 그치지 말고 경험을 나누고, 일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 P.188




현대 사회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사방에 존재하는 듯하다. 사람을 상품처럼 평가하고, 사랑마저도 교환의 대상으로 보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라던지,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사랑 대신 대체물(섹스, 소비, 권력 등)에 의존하는 것도 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당신이 필요하다”는 미숙한 사랑에서 벗어나,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소중하다”는 성숙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까?


책에서 제시한 사랑을 위한 수련 방식은 훈련, 정신 집중, 인내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감정에 기대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꾸준히 관계를 가꾸는 노력이 필수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가능한 오래 기억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그리고 그대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

- 혹시 요즘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더 많이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요?

-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인내하며 돌보는 마음"을 가진 적은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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