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기

북리뷰 _homo eruditio #16

by 방자

북리뷰 _homo eruditio #16

AI 덕분에 효율은 높아졌으나 일상은 여전히 분주하다. 나는 아낀 시간을 어디에 쏟고 있는 걸까. 그 시간이 부질없지 않으려면 제대로 써야 할 텐데. 문제 해결도, 요약도 AI가 해내는 시대에 내가 머물 곳이 결국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깊게 만드는 것이길 바랬다.


그래서 책장에 장식처럼 꽂혀 있던 벽돌책들을 꺼내 들었다. 두 달에 한 권, 올해 여섯 권.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사피엔스》, 《총·균·쇠》, 《물질의 세계》, 《넥서스》, 《마침내 특이점이 온다》까지—인간과 문명, 우주, 물질과 미래를 쭉 훑어 보면 어떨까? 이 험난한 여정을 혼자 완주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 시작을 함께할 동료들도 구했다. 책은 혼자만 열심히 읽는 것 같지만, 같은 길 위에 누가 있다는 인지만으로도 위로와 응원이 되었다. 그래서 감사와 함께, 새해에 시작한 《코스모스》의 여정을 남겨보고자 한다.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 토머스 헉슬리


《코스모스》를 펼치기 전 나는 이 책이 아득한 밤하늘의 신비로 나를 초대하는 친절한 과학 입문서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7주에 걸쳐 이 책을 완독하고 난 지금, 나는 이 책을 칼 세이건이라는 시대의 스승이 남긴 '지성의 유산'이라 부르고 싶다. 우주의 질서를 향한 한 인간의 이해와 통찰이 빚어낸 따뜻한 결과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주(Space, Universe)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관통하는 질서(Cosmos)다. 이 책의 제목이 ‘유니버스’가 아닌 ‘코스모스’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카오스(혼돈)의 우주가 아니라, 코스모스(질서)의 우주는 그 법칙과 원리를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인간의 의식이 존재함으로 가능하니 우주 먼지일 뿐인 우리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세이건이 인용한 헉슬리의 문장은 이 책을 지탱하는 토대처럼 느껴졌다. 지(知)와 무지(無知), 그리고 ‘무지의 지’. 우리는 섬의 해안선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존재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의 일부이며, 코스모스는 우리로 인해 존재한다.


이 책은 나를 거대한 은하단에서 미시적인 쿼크의 세계로 초대하며, 상상력만으로 우주를 줌 인(Zoom-in)하고 줌 아웃(Zoom-out)하는 일이 얼마나 경이로운 정신 활동인지 깨닫게 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의 작동 원리를 가설과 검증으로 풀어내려 했던 케플러와 뉴턴의 고뇌를 마주하며, 그들이 바친 일생에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세이건은 후대의 우리가 기술적으로 진보한 세상에서 이 책을 가이드 삼아, 거대한 상상력과 끝없는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검증을 향한 회의 능력', 즉 과학적 사고를 갖추고 드넓은 코스모스를 탐구해 나가기를 바랐을 것 같다.


독서 중 나는 내가 부족했던 것이 과학적 지식만이 아니라 역사적 지식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들려준 코스모스의 발전사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의 삶이 선대의 시간 위에 서 있다는 단순한 진실조차 잊고 지내는 나의 일상에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공백을 ChatGPT 같은 현대의 도구로 조금씩 메워가는 일은, 내 ‘카오스적 삶’을 ‘코스모스적 세계관’ 쪽으로 밀어 올리는 작은 실천처럼 느껴져 은근 뿌듯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에서 호기심을 놓지 않고 한 발 내딛는 일—그것이야말로 신의 변덕이나 운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법칙’을 읽어내기 시작한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사고가 아니겠는가.


책을 읽다 카오스와 코스모스는 외부의 실체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것이 나의 Aha Moment 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주는 혼돈(Chaos)이지만, 그 속에서 원리를 발견하는 순간 우주는 질서(Cosmos)로 탈바꿈한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The point is understanding)"이며, 이 즐거움은 우리가 우주와 단절된 이방인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라는 감각을 회복시켜 주는 듯 하다.


아마도 나는 평생 상대성 이론양자역학의 수식을 풀거나 완벽히 이해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스케일에 따라 물리 법칙이 변주되는 우주의 유연함을 알았고, 그건 내게 큰 영감이 되었다. 책을 읽다 만물의 실체가 비어있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지혜나, 모든 존재가 관계 속에 얽혀 있다는 '연기법‘이 떠올랐는데 나는 이 과학적 렌즈와 불교적 렌즈가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굳이 코스모스를 끝내기도 전, 몇년만에 반야심경을 다시 펴기도 했다.


아직은 익숙치 않지만, 그래도 과학, 물리, 천문학이라는 낯선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나의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듯 하다. 이제 나는 나와 지구가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 모두가 동일한 원자적 기원을 공유하는 우주적 동료임을 기꺼이 받아들여볼까 한다. 무엇보다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는 우주인과 대화할 수 있는 확실한 언어가 과학이라니 조금은 더 가까워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7주간의 코스모스 여정을 마친 지금도, 나는 우주의 원리를 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책을 읽기 전보다 나를, 우리의 소중한 터전인 창백한 푸른 점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은 우주를 조금 더 애정하게 되었다. 137억 살의 우주 앞에 서면, 인간의 삶은 찰나의 빛처럼 짧아 보인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우주의 기원을 더듬고, 그 광막함을 사랑하려 애썼다면 어찌 내 삶을 부질없다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백 년이 채 안 되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어쩌면 어떤 존재에게는—끝내 닿지 못할 내일이자, 영겁처럼 긴 시간일지도 모르니.


책장은 덮었지만, 나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코스모스》가 넓혀 놓은 생각의 지평 위에서 나는 다음 질문을 향해 걸어가 볼 생각이다. 우주는 여전히 여기 있고, 나는 그 신비로운 질서의 일부로서 오늘을 살아간다. 모르기에 더 묻고, 작기에 더 함께하며—그렇게 나는 내 몫의 우주를 배워가야지!




다음 달에는 《사피엔스》를 읽어 보려고 해요! 그리하여 3~4월, 두 달 동안 함께 사피엔스 읽기에 도전하실 분을 찾습니다.
매주 ‘읽은 만큼’만 가볍게—분량/키워드/소감/질문 공유하는 방식이에요. (짧게 남겨도 OK, 눈팅도 OK)

진행은 카카오톡방에서 하고, 목표는 3월 말까지 절반 / 4월 말 완독입니다.
완독 후에는 원하시는 분들과 온·오프 책수다 자리도 한 번 만들어보려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하단 설문에 정보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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