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편안해지는 옷이 있다. 질감, 색감, 두께감, 무게감, 모든 감각들이 똑 떨어지는 그런 옷. 오늘날의 옷은 신체 보호의 기능을 훌쩍 넘어서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가진다. 나이, 직업, 소득 수준 등 소속을 표현하고, 상황에 적합한 예의를 표현한다.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희로애락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입는 옷도 그렇다. 엄마이고 아내인 내가 입는 옷은 그냥 나일 때와는 조금 다르다. 마음이 동동 떠오르는 날에는 스트레이트 핏 진에 얇은 초록색 니트를 입고 아이들 데리러 뛰어나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트임이 과감할지언정) 언뜻 보기에는 단정해 보이는 블랙 원피스나 린넨 랩 스커트 같은 걸 입고 다닌다.
그런데 오늘은, 내 영혼이 편안해지는 옷을 입었다. 언제고 마음 놓고 나를 드러내도 괜찮은 나의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유행을 저버린 옷, 몸과 마음의 긴장을 느슨하게 하는 옷, 나는 오늘 그런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편을 뒤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