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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이 Jul 25. 2024

프롤로그-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섭식장애 攝食障礙

과도한 식이 요법의 부작용 또는 여러 가지 생리적, 정신적 원인으로 인하여 비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증상. 거식증과 폭식증이 있다.


*


나는 마른 몸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동경했다. 하지만 내가 마른 몸을 찬양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마른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나의 표정은 무언가를 숭배할 때의 눈먼, 그런 어떠한 표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다섯 가지의 계획이 있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말합니다.

누군가 이 계획을 보고 구원처럼 여기거나 따라 하는 어리석음의 반복 따위는 하지 않기를.


첫 번째, 약속을 최대한 잡지 않는다.(내가 가장 많이 썼던 방법 중 하나다) 밖을 나가지 않으면 먹을 일도 없다. 방 안에 갇히기를 스스로 자처한다. 나의 일정은 음식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내가 주체였던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돌아보면 한 번… 두 번…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두 번째, 어쩔 수 없이 밖을 나가야 한다면 최대한 낮은 칼로리를 먹던가 조금 먹던가 많이 움직이던가. 셋 중 하나는 실천해야 한다. 세 가지 모두 다 실천할 때도 있고. 사람들과 마주하며 음식을 먹을 때는 가면을 쓰고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해야 한다. 음식 앞에서 내가 조급해하고 있으며 떨고 있다는 사실을 티 내서는 안 된다. ‘나는 먹는 게 두렵지 않아. 이 음식이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잖아?‘라는 주문을 속으로 외우며 동시에 ’저 사람들은 정말로 음식 앞에서 자유로울까. 만족스럽게 배가 부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느낌이 불쾌하진 않을까. 아 벌써 배가 튀어나온 기분이야.‘라는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내 영혼을 죽여가며 식사를 해 보려 노력한다.


세 번째, 먹고 토하기.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던 방법이다. 말 그대로 먹고 토하는 거다. 처음 음식을 토했을 때 내 마음은 ‘자격’을 운운했던 것 같다. 네가 먹을 자격이 있느냐고. 런던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처음엔 참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행동 속에 익숙해지다 보니 토하는 게 일상이 되더라. 분명 나는 나 자신을 해치는 죄스러운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젠 더 이상 눈물이 나질 않았다. 토하던 자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과제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웃었다. 텅 빈 눈을 하고선.


네 번째, 세 번째와 비슷하긴 한데 위로 비우는 게 아니라 아래로 비워내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설사약으로.(좀… 그런가. 뭐 어때 위나 아래나)


마지막 다섯 번째. 그냥 먹지 않기. 그러니까… 최악이다.


*


나는 몇 년 동안 42kg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내가 마음 편히 음식을 먹었던 기억은 아득하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야식은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칼로리 계산기가 들어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 계산기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맥도날드를 가면 메뉴판 옆에 작은 글씨로 적힌 칼로리부터 봤다. 맥도날드뿐만 아니라 어느 식당을 가든지 가장 칼로리가 낮아 보이는 걸 주문했다. 런던은 어느 식당을 가던 고맙게도 메뉴판에 대부분 칼로리가 쓰여 있다. 덕분에 나는 먹고 싶은 걸 주문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음식을 보면 칼로리가 음식 위로 둥둥 떠 다니는 걸 어떡해. 이렇게 사는 것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마른 걸 부러워했고 항상 예쁘다고 해줬으니까. 오히려 보기 좋다고 해줬으니까. 나는 말랐다는 게 칭찬인 줄 알았지. 어리석게도 나는 마른 내가 나인줄 알았고 살찐 나는 내가 아닌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진짜 마른 걸 원하는 줄 알았다. 내가 아프로디테를 섬기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나는 행복을 원했지 내가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식이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처음부터 내가 식이장애가 있다고 인정한 건 아니었다. 내가 계속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음식을 먹고 토하는 상태가 지속이 되고 있었음에도 나는 나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했다.


식이장애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단순히 마른 몸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는 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음 아주 깊은 곳부터 나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보이지 않는 기생 생물 같은 것이었다. 이 기생 생물은 활동 영역이 넓어질수록 검은 포자 같은 것들을 퍼뜨렸는데, 그 검은 포자들은 내가 진정 무얼 원하는지 망각하게 만들었고 내가 누구인지 점점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점점 더 비대하게 또 기괴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거울을 보는 게 너무 무서웠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랑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싫었다.


*


펑! 하고 시한폭탄이 터지듯 터질 게 터진 내 마음의 문제는 2023년 런던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약 5년간 나와 함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던 식이장애가 드디어 나와 한 몸이 되어 핵융합을 일으킨 사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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