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세상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by Chet

프랑스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1866년, 문제적 회화 〈세상의 기원 L'Origine du monde〉을 발표하며 당시 미술계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이 작품은 얼굴을 철저히 배제한 채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제목 그대로 인류가 은밀히 감춰져 있던 작은 구멍 ― 여성의 성기 ― 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는 이전까지 은유와 상징으로만 다뤄졌던 주제를 노골적으로 표면화함으로써, 생명의 근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17〉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현대적으로 변주한다. 영화 속에는 두 가지의 탄생과 열일곱 번의 죽음이 교차한다. 처음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어난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국가적 희생의 도구로서 첫 번째 죽음을 맞는다. 그 후 그는 따뜻한 자궁이 아닌 차가운 바이오 프린터에서 기억이 덧씌워진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발생한다. 과연 ‘프린팅된 미키’는 새로운 탄생으로 볼 수 있는가? 반복적으로 출력되는 복수의 미키들은 그저 기억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탄생이란 단순히 생명이 출력되는 순간이 아니라, 세상에 던져져 실존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 즉 피투성(被投性)을 경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는 의미심장한 세 개의 ‘구멍’이 등장한다. 첫째, 바이오 프린터는 인간이 만든 인공적 자궁으로, 고통의 가치를 축소하고 가상을 생산한다. 둘째, 폐기물 처리장의 구멍은 존재의 소멸을 재촉하며 인간의 복수심을 드러낸다. 셋째, 크레바스는 미키가 추락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재탄생을 가능케 하는 우주의 자궁이다. 이 세 구멍은 각각 인간이 만들어낸 소멸과 복제의 메커니즘, 그리고 자연이 품고 있는 원초적 재탄생의 공간을 상징한다.


익스펜더블로 살아가는 미키는 열일곱 번의 소멸을 반복하면서도 실존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그저 소모품으로 기능할 뿐이었다. 그러나 팀원 제니퍼의 죽음을 목도한 순간, 그는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을 통해 충격을 경험한다. 또한 나샤와의 지속적인 육체적 관계를 통해 미묘하게나마 인간의 감각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를 조금씩 변화시키며, 결국 크레바스에서 만난 크리퍼 무리와 마마 크리퍼와의 조우를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만든다.


우주선에서 유일한 ‘이종족’이었던 미키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이종족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새롭게 자각한다. 인간 사회의 거짓된 소문과 명령을 믿으며 17번째 소멸을 기다리던 그는, 크리퍼 무리에게서 오히려 ‘재탄생’을 경험한다. 이는 단순한 복제가 아닌, 새로운 실존으로의 도약이었다.


크레바스라는 우주의 자궁에서 다시 태어난 미키17은 자신의 또 다른 존재인 미키18과 직접적으로 마주한다. 이 대면은 자기 분열이자 새로운 기원의 순간이다. 이제 그는 단순히 복제된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기원이 된다. 미키17은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이종족과 소통하며 살아 움직인다. 그는 크리퍼 무리를 구해냄으로써 실존을 증명해내고, 더 이상 수동적 소모품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로 변화한다.


마지막 폭발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 ― 반복되는 복제와 소멸의 굴레 ― 를 끊어내고, 새로운 피투성을 증명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은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던진 질문과 다시 만난다. ‘세상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실존은 어떻게 증명되는가?’ 〈미키17〉은 이 질문을 우주의 자궁 속에서 다시 태어난 한 인간의 실존 투쟁으로 변주하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