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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여행 : 스페인 바르셀로나(1)

다양함이 주는 편안함

by 이사공

그날은 기어코 온다. 우리는 대학 때 하지 못한 한 달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했더랬다. 한참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 티켓을 사고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떠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어코 그날이 왔다. 가방을 싸고,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짊어지자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점점 낯선 공간으로 이동했다. 여행을 갈 때 멀리 떠나 온 것이 가장 실감 나는 순간은 표지판에서 한국어가 사라진 순간이다. 우리는 카타르를 경유해 첫 번째 도시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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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5일 동안 우리가 묵을 숙소로 이동했다. 짐을 내려놓고 바로 거리로 나섰다. 바르셀로나 올드타운을 걸었다.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걸으며 가장 눈에 띈 것은 다양성이었다. 다양함에 익숙한 사람들. 서로의 옷차람이나 머리모양은 개의치 않았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다. 한국 거리에서 만났으면 깜짝 놀랄만한 옷차림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 거리에선 자연스러워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속옷을 입지 않은 여자분들이 많았다. 처음엔 익숙지 않아 놀라웠는데 계속 마주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처럼 느껴졌다. 브라탑에 짧은 쇼츠를 입은 만삭의 임산부도 보았다.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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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이사’라는 말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 ‘남이사'라는 주문을 외우면 그 불편함은 흔적 없이 사라지곤 한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진 않은가, 타인의 행동에 걱정이라는 이름의 오지랖을 부린 적은 없는가 생각해 본다. 자유로운 모습이 곧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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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오면 과일가게, 채소가게를 들려본다. 이국적인 모습의 채소와 과일을 보는 것이 즐겁다. 호박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토마토를 처음 보았다. 신 맛이 나서 요리해 먹으면 맛있다고 옆에서 계산하던 분이 얘기해 주셨다. 가지는 한국보다 가늘고 길며 구불구불 춤을 추더라. 유명한 납작 복숭아가 있길래 2,500원 정도 되는 돈에 4개를 사 왔다. 물복숭아 같을 줄 알았는데 딱딱한 복숭아였다. 내가 잘못 고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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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별다른 포장 없이 진열해 놓고 파는 것이 좋았다. 비닐이나 포장재를 줄일 수 있다. 장바구니를 챙겨간다면 과일만 덜렁 집어 담아 장을 볼 수 있겠더라. 구매할 것들을 계산대에 가져가면 무게를 달고 계산기를 두드려 값을 알려주신다. 가격표를 굳이 스티커로 출력하여 붙이는 과정이 없다. 과일, 채소들이 균일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생긴 것도 보기 좋았다. 한국 대형마트의 채소들처럼 비닐로 씌워 형태를 잡지 않았더라. 예쁘지 않아도 맛은 여전한 것이 채소와 과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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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인물을 하나 꼽으라면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있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그의 건축물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우리는 그중 하나인 카사바트요에 방문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직선적인 건축물들을 좋아한다. 외장도 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에 색조도 최소한만 쓴, 그런 건축들이 좋아서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래서 카사바트요에 가는 동안에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이루고 있는 유려한 곡면의 매력을 발견했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전시장이었다. 다 둘러보는 데 시간도 제법 걸렸다. 오디오 가이드가 시적인 문구들로 작성되어 있었다. 건물에 흠뻑 몰입할 수 있도록 신경 쓴 것이 느껴졌다. 창문이나 가구를 직접 이용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런 집에 산다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절로 상상을 해보게 됐다. 좋은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역량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삼 가우디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게끔 허락한 클라이언트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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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유명 관광지들은 온라인 예약이 필수더라. 아무 준비 없이 방문한 우리는 결국 대문들만 구경하고 돌아오기를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원체 포기가 빠르고, 체크포인트 도장 찍듯 필수 코스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걸었고 바르셀로나 주민이 되어보려 노력했다. 그것이 우리의 놀이였다. 하루는 길면서도 짧았다. 그저 걷기만 해도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 3만 5 천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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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곳곳에는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시설을 양껏 이용하고 있었다. 설치된 시설들이 방치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좋았다. 날은 덥지만 사람들은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실내로 거의 들어가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바르셀로나는 더웠다. 하지만 덥지 않았다. 그늘에 서면 금세 땀이 식을 정도로 시원했다. 지칠 때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면 그만이었다. 근처 공원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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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에 가서 상그리아를 마셨다. 달지 않고 계피 향이 강하게 났다. 스페인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빠에야와 튀김을 시켜 상그리아와 함께 먹었다. 어두운 밤에 야외 자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즐겁더라.


바르셀로나는 밤이 되어도 북적였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많이 받았지만 생각보다 위험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요즘은 유럽에서도 다들 신용카드를 써서 그런 걸까? 모두들 편하게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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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바다로 향했다. 눈 뜨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기다리던 물놀이였다. 햇빛이 쨍한 해변, 바닷물은 빛을 받아 투명하게 흔들렸다. 우리는 햇볕에 몸을 그을리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하며 이렇게 가만히 있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멀리 오면 멀리 올 수록, 그 노고가 아까워 마음에 조바심이 난다. 무언갈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다. 바다에서 우리는 그냥 쉬었다. 물놀이도 멈추고 모래사장에 누워 눈을 감아 보았다. 파도소리와 멀리 이국의 낯선 언어가 들려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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