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규슈의 최고봉, 구주산 들머리로 향했다. 버스에서는 차창 밖으로 풍경이 트이는 타이밍에 맞춰 ‘꿈의 야마나미 하이웨이(夢のやまなみハイウェー)’라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1964년, 벳푸에서 아소·쿠쥬 연산을 지나 나가사키까지 이어지는 야마나미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만든 곡으로 경쾌한 멜로디가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할머니 집의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노이즈가 섞인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니 낯익은 향수가 느껴졌다.
등산을 해보면 산이 높다 하여 무조건 힘든 것도 아니고, 자그마한 산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산을 최고봉이라 하면 그 지역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구주산도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 산이다. 구주산이지, 구중산인지, 쿠주산인지, 쿠쥬산인지 참으로 헷갈렸던 산. 때문에 검색을 할 때도 몇 번이고 검색어를 바꿔가며 놓치는 정보가 있을까 불안해했다. 이는 이 산의 이름의 한자가 두 가지로 혼용된 탓이라고 한다. 정상 봉우리를 칭할 땐 오랠 구久, 살 주住를 써서 구주久住라하고 쿠쥬연산을 뜻할 땐 아홉 구九에 무거울 중重을 쓴다 한다. 일본어로는 둘 다 ‘쿠쥬’라 하여 발음이 같으나 한국식으로 읽을 땐 이 둘의 발음이 달라 그런 혼선이 생겼나 보다. 우리는 정상을 다녀오는 1박의 짧은 코스를 다녀왔으니 구주산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길이 복잡스럽지도 않았거늘 우리는 헤맸다. 걷다가 이마께에 거미줄이 걸린다 하면 영락없이 잘못된 방향이었다. 초반엔 그것도 모르고 길이 험하다며 앞으로 앞으로 헤치고 나아갔더랬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이 밟아 다져진 길과, 그저 풀이 말라붙은 풍경이 구분이 잘 가지 않는 탓에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샛길로 빠져있곤 했다. 땅이 얼어붙어 있었지만 빙판처럼 미끄럽진 않았다. 건조해서 성긴 흙 사이로 얼음이 슬러시처럼 얼어 틈새를 메우고 있었다. 그 위를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자꾸만 길을 헤매게 된 데는 등산로가 바위가 우르르 쏟아진 형상을 한 탓도 컸다. 풀이 없는 구간은 그저 돌무더기가 이어질 뿐이라 길이 태가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노란 스프레이로 표식이 되어 있었는데, 가끔은 그 표식이 바위 밑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 놓치곤 했던 것이다. 그래도 유심히 살피면 금방 제 길을 찾을 수 있어 위험하진 않았다.
몽블랑에서도 산장에 묵어보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도 대피소 예약이 힘들어 가보지 못했는데, 일본에 계신 지인의 도움으로 난생처음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예약이 없고 전화로만 예약을 받기에 부득불 부탁을 드리게 되었는데, 도착 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곳은 인터넷이 안 되더라. 오후 4시쯤, 홋케인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할 일이 없었다. 산행을 하며 휴대폰은 얼마 보지 않은 것 같았는데, 막상 없어지니 무척 허전하더라. 미리 사 온 컵라면을 저녁으로 먹으며 잠시 휴식 후 온천욕을 했다.
산장에 묵는 게 처음인지라 비교군이 없어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곳은 독특한 곳이었다. 정확하게는 해발 1,303m 치고 꽤 호화로운 곳이었다. 대부분의 산장은 별도의 방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지막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불편을 감수하며 낯선 이와 나란히 누워 자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곳은 호사스럽게도 널찍한 방을 내어주는 데다, 묵직하고 두툼한 요 이불, 후톤까지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다. 옆 건물로 건너가면 규슈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산중 온천이 있어 산행 내내 추위에 떨었던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게다가 방을 안내할 때는 약도가 필요할 정도로 그 규모도 대단히 컸다. 그러니까 이곳은 산장이기도 하고, 온천이기도 하고, 135년을 지낸 오래된 료칸 같기도 했다.
산장에서 몇 걸음만 걸어 나가도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상태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잠시 기다리면 우리 머리 위로 소복하게 쏟아지는 별 무리와 은하수를 만난다. 산장을 지나 멀리 보이는 캠핑장에 텐트를 치는 산객들이 보여 부러워했었다. 깊은 산속에서 야영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그랬다. 하지만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지지고, 김이 펄펄 나는 몸뚱이로 겨울 밤하늘 아래로 나와, 차가운 겨울밤공기를 폐에 한가득 담고 나니 이곳에 오길 참 잘했노라 절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보통 여행에선 늘 시간을 촘촘히 쓰는 우리였다. 산 중에 인터넷 없이 덩그러니 보낸 시간이 다음 날이 되니 묘하게 생각나더라. 그도 디톡스였던 것 같다고 했다. 나무로 만들어져 소리가 울리는 마루, 창밖의 계곡물 흐르는 소리, 찬란한 별빛과 가볍게 챙겨 온 허접한 저녁 식사까지 모두가 자극이더라. 휴대폰이 없으니 보고 듣고 느낄 거리가 지천이었다. 휴대폰이 나를 둔감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같은 시간도 더 또렷한 순간으로 채울 수 있었는데 말이다.
산에서 자면, 아침에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산행이 시작된다는 점이 행복하다. 걷고, 자고, 또 걷는 시간. 참 아름다운 단순함이다. 어제 높은 데까지 이미 많이 올라온 덕분에 오늘은 거의 능선을 바라보며 걸었다. 고도가 높아지며 조금씩 멀리까지 시야가 닿자, 저 멀리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움직임을 멈춘 파도처럼 깔려있었다. 눈도 없고 풀도 없는 산은 한사코 싫다며 이 계절의 등산을 피해 왔던 나였는데, 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울 뿐이었다.
이번엔 조금 독특한 산행이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 어느 지점에 당도하니 뾰족한 봉우리들이 나를 선택해 달라는 듯 우리 앞에 줄지어 늘어섰다. 우리는 입맛대로 산을 골라 오르락내리락하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면 되었다. 신기한 점은 그렇게 옹기종기 붙어있는 봉우리들인데도 각각의 생김이 달랐다. 때문에 우리가 걷고 있는 등산로의 모습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바위를 타다가, 모래를 밟다가, 좁은 나무 틈새를 비집고 들다, 풀밭도 걸었다. 그게 재미났다. 거기에 더해 조망이 쉴 새 없이 트인다. 그것도 여러 모습으로. 높게 솟아오른 화산과 색색으로 물든 산과 들, 정처 없이 흐르는 구름과 저 멀리 바다까지 별별 구경을 다 했다. 우리는 시라구치(白口岳, 1,720m)와 이나보시산( 星山, 1,774m), 그리고 구주산(久住山, 1,786.5m)과 홋쇼산(星生山, 1,762m)을 거쳐 하산길로 향했다.
봉우리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꼭대기에 올라서면 내가 지나온 봉우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앞에 보이는 고개를 봤을 땐 오를 생각에 까마득했는데, 걷기 시작하면 오르는 건 늘 생각보다 금방이다. 문득 뒤돌면 어느새 우리의 출발점은 까만 점이 되어 소멸하기 직전이다. 등산은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나의 한 걸음은 이리도 작고 느린데, 언제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렸을까. 우리의 걸음, 걸음들은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몽블랑 안 가도 되겠다.’ 그는 말했다.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규모는 그것과 비교도 안 되게 작고, 알프스 산자락과 닮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까닭은 일본의 산만으로도 백산 백색의 풍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화산지형이라 3,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도 여럿인 데다 독특한 암질을 갖고 있거나 산이 펼쳐진 규모가 굉장한 곳도 많았다.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나라다 보니 기후대도 지질구조나 지형도 다양하다. 일본 내에서도 워낙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니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놀거리가 풍성해 보였다. 일본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런 자연적인 조건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각 봉우리는 오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하산길에서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길이 완전히 진흙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질 뿐 아니라 진흙이 쩍쩍 달라붙어 신발이 몇 번이고 벗겨질 뻔했다. 나는 신발이 빠지지 않게 버텨가며 한 발 한 발 겨우 걸었다. 등산로의 가운데는 너무 질어 그나마 단단한 양 끝을 밟으며 내려왔지만, 중심이 계속 가운데로 쏠려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방심한 순간, 결국 나는 그 진흙 구덩이에 와장창 넘어지고 말았다. 옆을 지나던 일본 등산객들께서 괜찮냐고 물어오셨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진흙에 발이 빠지기 싫어 그렇게 애쓰며 내려왔거늘 결국 바지며 가방이며 땅을 짚은 손바닥까지 진흙 범벅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 온 뒤의 산길, 죽이 된 흙길을 걷는 건 정말 싫다. 하지만 그런 길을 하는 수 없이 오래도록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편안해진다. 어차피 이미 다 더러워졌으니 조심할 것도, 옷이며 신발을 털며 걸을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묘한 해방감이 든다. 이젠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그냥 맘 편히 진흙탕을 터덜터덜 걷는 것이다. 더 엉망일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버린 순간, 오히려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마치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 속절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았을 때, 이상하리만치 더 신이 나서 집까지 뛰어갔던 그런 날처럼 말이다.
구주산 등산 후엔 유후인이나 벳푸로 이동해 온천에서 몸을 녹이는 게 흔히들 하는 여행 코스였다. 우리도 노천탕이 있는 숙소들을 예약해 두었다. 유후인과 벳푸는 차로 30분 거리로 가깝기에 우리는 두 곳 다 가보기로 했다. 유후인은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답게 집집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아늑하게 느껴졌다. 아기자기한 온천마을을 거니는 것도 좋았다. 벳푸에선 오래된 일본식 건물에서 묵었다. 기다랗게 이어진 복도와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마룻바닥, 옆으로 뚫린 미닫이문 밖으로는 정갈한 일본식 정원이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날 저녁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노천탕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 비가 와도 괜찮은 건지 조금 염려가 되었는데, 숙소 직원분께서는 비가 오니 온천을 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라고 하셨다. 과연 그랬다. 뽀얀 김이 차오르는 욕탕에 몸을 담그자 나의 어깨와 콧잔등엔 차가운 저녁 밤공기가 스몄다. 그 온도차가 이번 여행의 피로를 모두 앗아가 주는 것 같았다.
사치와 낭비의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언가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모처럼 해외에 나와서 등산을 하는 것이 ‘굳이 사서 고생’으로 보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 끼니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그 도시의 랜드마크를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현지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가장 큰 만족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숙소에 큰돈을 쓰는 일이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온천으로 유명한 이곳까지 와서도 료칸을 예약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멀리까지 와서 숙소에만 머무는 건 오히려 여행을 낭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자그마한 노천탕이 있는 소박한 숙소를 선택했다. 어느 쪽에 가치를 두고, 어디에 시간을 쓰며, 무슨 일에 체력을 쓰고, 또 무엇에 돈을 지불할지. 아름다운 여행의 이면에는 늘 이런 저울질이 뒤따라오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내린 선택들도 언젠가 그 기준이 달라질지 모른다. 가끔은 지나간 여행들을 곱씹으며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겠지. 그렇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작고 큰 만족들로 채워나가는 지혜가 나에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