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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Jul 22. 2024

스스로에게 관대한 길치

일상이야기

어릴 때부터 길치라는 것을 알았고, 50살이 넘어서도 길치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길치 사건들이 있다.


대학교 시절 - 신촌 5거리에서의 방황

대학교 때, 신촌 5거리에서 은사님을 방문하려고 했다. 같은 기수와 후배들은 여름 땡볕에서 길을 찾았고, 올라온 길을 제외한 4곳 중 하나가 목적지였다. 내가 확신한 길을 따라 10여 분을 걸었지만 아니었다. 되돌아와 다음 길을 갔지만 또 아니었다. 남은 2곳 중 한 곳은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길로 갔더니 드디어 은사님의 병원이 나왔다. 동기와 후배들의 그럼 그렇지하는 눈총을 따가웠다.


엠티 사건 - 계곡의 민박집

최고학년인 우리는 실습 때문에 따로 늦게 출발했다. 양손엔 먹을 것들이 잔뜩 들려있었다. 계곡의 민박집이라 무난히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갑자기 갈림길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15분 걸린다고 들었기에 직선길을 선택했다. 직선길로 30분을 걸어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결국 되돌아와 굽은 길을 선택했더니 5분 만에 도착했다. 동기들은 내가 우측 길이라 말하자, 직선길이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 서울에서 길을 잃다

방학이라 서울의 사촌 형 집에 놀라갔다. 부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지하상가를 지나 뉴코어 백화점을 지나야 했다. 한 번은 지하상가 구경에 빠져 평소와 다른 길로 올라갔다. 30분을 걸어도 109동이 나오지 않아 공중전화로 사촌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 놀러 온 사촌 누나가 나를 찾으러 왔다.


최근 3년 - 고기집을 찾지 못하다

매우 자주 회식 장소로 가는 고기집이 있다. 10번은 간 것 같은데, 매번 길을 못 찾아서 전화를 해야 했다. 한 번은 구글 지도를 꺼내어 길을 찾았다. 결국 못찾고 또 전화를 했다.


1년 전 - 후쿠오카에서 길 찾기

아이들과 휴가로 후쿠오카에 갔다. 예전에 갔던 음식점을 다시 가고 싶었는데, 내가 기가 막히게 길을 찾았다. 동서남북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다. 한 번 가본 서울의 극장을 골목길을 이리저리 가면서 찾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방향을 잡는 데 늘 어려움이 많았다.


최근 - 지하철에서

갈수록 길을 찾을 일이 없다. 차를 몰 때는 내비게이션을 활용했고, 걸어서 어딘가를 갈 일이 별로 없다. 친구들과 온천장에서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이용했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엄청 막히는 시간대였고, 2호선을 타고 3호선을 갈아타고 1호선을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몇 달 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떴다. 1호선으로 갈아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약속장소였다. 창 밖의 벽면에 예상과는 다른 역의 이름이 보였다. 반대로 탄 것이다. 벌써 몇 정거장을 지나 있었다. 결국, 다시 카드를 찍고 원래 방향으로 돌아갔다.





방향치가 결국 길치다.

길치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나를 정의하려 했지만 결국 길치가 맞다. 살면서 삶의 방향을 잘 잡는 것도 능력이다. 나는 매번 주변 멘토들의 조언을 따르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나에게 맞다고 권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하고 싶은 건 가고 싶은 길인데, 지나고 보면 권유하는 길이 정답인 경우가 맞았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안내자들. 지금은 그 역할을 아내가 주로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도 내가 우겨서 한 일들은 결국 결과가 좋지 않거나, 중간에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누군가는 실행해야 한다. 나는 실행하는 쪽을 잘 하는 사람인 듯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들여다 보자.

잘 못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잘 하는 쪽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자. 못하는 쪽은 외주를 주자. 결국 판단은 본인의 몫이지만, 틀린 4개의 길을 가는 수고보다는 정확한 길을 제시할 한 명의 말을 듣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살면서 만나는 안내자들에게 항상 감사한다. 내가 잘났다고 고개를 드는 순간 자만 때문에 틀린 길을 가기도 했다. 대신 누가 나에게 진실된 안내자인지를 파악하는 호루스의 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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