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님 이야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까?
사업용조종사 자격(CPL, Commercial Pilot License)을 취득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기쁨은 정말 잠깐이었다. 꿈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CPL은 기장으로 항공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운전면허증처럼 하나의 자격증에 불과할 뿐이었다. 심지어 어디다 써먹을 수도 없는 값비싼 장롱면허가 되는 것이었다.
CPL을 따고 1년 사이 항공사에 들어갈 수 있던 4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 기회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필기, 실기(SIM)까지는 잘 통과했지만 자신 있던 면접에서 오히려 고배를 마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핸디캡 극복을 위한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미국에 다시 가서 단기에 타임빌딩(비행시간을 쌓기 위한 비행)을 통해 경쟁력 강화와 지원가능한 항공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었다.
150시간의 타임빌딩을 통해 500시간의 비행시간을 만들면 일반적으로 300시간 대인 경쟁자들보다 경쟁력 있는 비행시간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비행시간 500시간 이상만 지원할 수 있는 항공사의 지원자격도 갖출 수 있었다. 계산상으로는 하루에 4시간씩만 비행을 해도 1달에서 2달 내에 500시간의 비행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었다. 시간당 약 200달러로 계산하면 150시간 약 3만 달러를 하늘에 뿌려야 했다. 이미 내가 뿌린 돈도 억 소리 나는데, 내가 무슨 만수르의 자제도 아닌데 부담이 큰 비용이었다.
두 번째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에서 교관과정을 하며 1,000시간의 비행시간을 만들어 대형항공사까지 지원하는 것이었다. 교관자격 취득기간 동안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교관자격 취득 후 학생들에게 비행을 가르치는 시간이 비행시간으로 인정되어 타임빌딩 보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비행시간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어 1,000시간을 쌓고 돌아와서 나이를 고려하면 1-2번 정도의 지원 기회밖에 없을 것 같았고, 과정이 지체되면 만 40세도 넘을 수 있어서 high risk, high return을 감수해야 했다. 이미 인생 2막 도전 자체가 high risk였는데 이 방법은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방법이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세 번째 방법은 비행은 계속 하긴 하는데, 항공사 취업은 포기하는 변칙적인 방법이었다. 두 번째 방법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교관과정을 하는데 과정을 천천히 진행하며 비자를 변경하여 미국에서 경비행기 교관을 하며 인생 2막을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인생 2막 도전할 때의 패기와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항공사 취업이 안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계는 이어가야 하고 이제 말문 트인 어린 주니어도 키워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서는 상황에서 생각해 낸 방법이었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였던 방법이었다.
3가지 방법 모두 미국으로 다시 가야 하는 방법이었고, 첫 번째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었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형항공사 중 한 곳에서 CPL자격 보유자 대상으로 조종사는 아니지만 지상교관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떴다.
조종사 중에 지상근무를 병행하며 비행을 하는 조종사를 보직기장이라고 하는데, 지상교관은 보직기장을 지원하기도 하고, 조종사들의 지상교육과 비행매뉴얼 관리 등의 보직기장의 일부업무를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상교관이 되면 비행과 직접 관련 있는 경쟁력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 LCC항공사의 조종사로 이직하기가 수월하여 예비조종사들 사이에서는 틈새시장으로 인기가 많은 자리였다.
그래서 여기에도 취업대기 중인 예비조종사들이 많이 몰린 데다가 뽑는 인원도 적어서 경쟁률이 생각보다 높았다. 채용과정은 항공이론 필기와 실무면접, 영어면접, 임원면접까지 SIM check만 빼고 조종사 채용과정과 비슷했고 면접 때도 현직 기장인 팀장과 임원이 들어왔다.
필기와 실무, 영어면접까지는 이번에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그리고 좋은 분위기에서도 계속 발목을 잡힌 임원면접! 이번에도 분위기는 '어서 와 우리 회사는 처음이지?' 분위기였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을 찾자면 그동안 핸디캡으로 작용했던 많은 나이가 이번에는 어드밴티지로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회사입장에서는 언제든 조종사로 튀어나갈 수 있는 자원보다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자원을 선호할 테고, 나이가 많을수록 라인조종사의 꿈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속으로는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면접 때는 거두어만 주면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합격통보를 받았다.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한편으로는 백수생활을 끝내고 생계는 이어갈 수 있다는 기쁨과 한편으로는 조종사로서의 합격이 아님에 아쉬움이 교차하였다.
사실, 나는 교관채용공고가 나왔을 때 지원을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었다. 교관이 되면 최소 1년은 조종사 지원은 못할 것 같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조종사 지원에만 집중할까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채용공고가 떴을 때도 나는 지원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눌님이 어느 날 조용히 오더니 교관지원을 했는지 물으며 지원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피닉스 5형제(ep.26) 육아 동기들에게 이 소식을 들었는데 내가 아무 말이 없어서 기다리다가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리고 불확실한 도전을 계속하는 것보다 기회가 된다면 안전장치를 하나 걸어놓고 도전을 이어가는 것이 어떻게냐는 생각을 전했다. 이런 생각을 듣고 그동안 이야기를 못했겠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2년이나 안고 지냈을 마눌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여서 플랜 B 마련을 숙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합격통지를 받고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왔으니 이번에는 마눌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때나 지금이나 '마눌님 이야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분은 입에 침이나 바르고 이야기하라고 한다.ㅡㅡ;
이렇게 나는 인생 2막의 최종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조금은 돌아가야 하지만 안전한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