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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Mar 31. 2018

빈 의자 쌓아두기

7월의 화요일 : 떠나다



07.04.


선뜻 여행을 잘 떠나지 않는 나지만, 일 때문에 서울을 떠나왔다. 부담감을 가득 안고 마주한 새로운 풍경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 아쉬움이 남은 일이 주는 얕은 여운이 있었을 뿐.


  



07.11.


생각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닌데, 수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왔다. 떠나간 사람과 그들이 남긴 빈자리, 그 자리에 곧 새로운 사람이 자리한다.


시간의 흐름이 멈추지 않는 한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적인 삶이라면, 나의 바람은 헛된 것일까.




07.1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지금은 보내줘야 할 때.




07.25.


사람 마음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그 어려운 사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또 뭘까.




18.03.31


얼마 전 밥 먹듯이 일상적으로 마주해온 인연과 작별 인사를 했다. 참 오래된 인연이라 이 인사가 끝이 아닐 것임을 믿으면서도 순간순간 잦아드는 아쉬움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출근길에도, 일을 하다가도, 집에서도 아쉬움이 찾아왔다.


한동안 나를 잘 아는 이들의 걱정과 그 걱정을 아는 나 사이에 자주 침묵이 오고 갔다. 조심스러운 그들의 속삭임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힘듦도 드러낼 수 없던, 그러고자 힘겹게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그 사이 나는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사소하고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렀다. 그의 흔적이 남은 자리 사진을 한 장을 미리 찍어두었다. 그 사진에 이름을 적고, 그간 차곡차곡 쌓아둔 사진들 가장 위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이 곁에 닿은 듯 체감이 되던 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우린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헤어졌다. 꿈에서 깬 아침, 눈을 뜨고 나서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어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만큼 한참 동안 멍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그 날 아침 이후, 눈물이 났다.


눈물과 함께 출근한 그날, 무심한 듯 아닌 듯 '오늘 눈이 빨갛네, 잠 못 잤어? 아니, 눈가가 촉촉한데? 울었어?'하고 묻는 이의 말에 회사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냥 울었다.


우린 작별 인사를 했다. 밥 한 끼를 같이 먹었고, 헤어졌다. 요즘은 침묵 대신 '괜찮냐'는 주변의 물음을 종종 받는다. 그리고 아직 괜찮지 않다. 문득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함께 했다면 재미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빈자리를 몰래 쳐다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곤 한다. 한동안 크게 남을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더욱 세게 끌어당겨 볼 생각이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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