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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급한 선수 Sep 04. 2023

알 수 없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대하는 태도

부모에 대한 적개심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세 번째 살인> (2017)


 영화는 변호사와 살인자, 그리고 피해자의 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변호사와 피해자의 딸이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는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살인자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일관성의 결여를 중심으로 불신을 구성한다. 하나의 성질을 이해해 봤자 일관되게 활용할 수 없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겠다. 이 두 가지는 연결되는 것일까?


 은퇴한 판사인 아버지와 진실보다 전략을 중요시하는 아들이 사형에 대해 논한다. 이들 부자는 심판의 일부를 담당했고, 담당하고 있다. 사형은 가장 극단적인 심판이다. 에피쿠로스의 의견을 빌린다면, 범죄자를 구성하던 원자가 해체되고 나면 당사자에게 그 심판은 아무런 의미를 남길 수 없다. 사형은 당사자가 배제되는, 온전히 타인을 위한 심판이다. 그렇기에 사형 그 자체를 위해서는 이 두 사람이 정의하는 사형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당사자의 의견이 어떠하든.


 아버지는 자신이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사람이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보고 과거의 온정을 후회한다. 사회가 살인을 만든다 생각했던 과거가 틀렸고, 원래 그런 사람이 있다고 확신한다. 선을 넘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넘느냐 마느냐는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경우 두 번째 살인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살인자가 선을 넘게 결정되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언젠가 선을 넘을 것이고, 선을 넘는 것은 그의 의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전에 심판하는 것 외에는 선을 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갱생을 불신하고 믿는 태도가 오만하다고 말한다. 여러모로 공교롭다. 우선 사법 제도의 마지노선을 담당하던 사람이 갱생을 믿지 않는다니. 이 경우 사후 대처보다 사전 선별이 더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사고 친 사람은 뭘 해도 다시 사고를 칠 테니까. 사고를 치기 전에 예측해서 미리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합리적일 듯 보인다.


 그리고 불만을 드러낸 아들은 진실보다 전략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진실은 알 수 없다며 전략적으로 유리한 요소를 선택한다. 어떻게든 적은 형량을 받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갱생과 아무 관련 없어 보인다. 아마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 무조건적인 반대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는 변호사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진실은 사실적 정보와 완전히 합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실은 인간이 프레임을 씌우기 전까지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해석이 결여된 사실은 진실이 될 수 없다. 해석은 주관적인 행위이기에 모두가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가 진리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 이후에, 사실을 어떤 프레임을 통해서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하다. 심판은 그 지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그리고 몰입해야 한다. 의미의 심화는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달린 일이다. 심판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프레임을 제시했다면, 그것이 진실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프레임에 함께 몰입해야 한다. 사법 제도가 아닌 사법 관련 종사자의 생태가 주된 고려 사항이 되는 순간, 몰입은 깨진다. 몰입이 깨지면, 심판이 가진 진실성도 사라진다.


 사법 제도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해당 제도에 몰입해야 한다. 변호사는 계속 외면해 오던 것을 참지 못하고 몰입해 버렸기에 길을 잃었다. 그러나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아무도 방향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길을 잃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전까지 우리는 매번 쓸데없는 것에 몰입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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