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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급한 선수 Nov 11. 2023

유리병 속 흔들리는 파도

속이 좁을 수록 힘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최유안,『보통맛』, 민음사(2021)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일그러진 얼굴을 부여잡고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함께 있어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오대수의 기나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인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잠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다 끝나서야 오대수가 누구냐고 물어볼 것이다. 켄드릭 라마도 자신의 메시지가 세상에 닿지 못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데, 오대수의 혀가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보통맛』의 이야기는 입 안에서만 맴돌고 뻗어나가지 못한다. 「거짓말」에서 화자는 거짓말을 던지고, (다시 말해 내가 방금 뱉은 문장은 일종의 회피성 빈말이었다.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게 내가 쌍둥이 여자에게, 직장 사람들에게 가림막처럼 쓰는 일. 그러니까, 일종의 거짓말) 받으면서, (전화를 끊고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엄마의 이 말은 진심일까. 뭐든 다 괜찮다고 엄마 스스로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런 것처럼, 엄마도 지금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공감해 주며 자기가 정말 원하는 말을 슬쩍 묻어 버리는 거 아닐까) 차곡차곡 쟁여둔다.


 거짓말은 행동의 유보를 함축한다. 유보된 행동의 잔상은 각막에 번인으로 쌓여 시각 정보를 교란한다. 당신이 눈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헛것인 걸 알아도 보이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귀신을 아는 사람은 없어도 귀신을 보는 사람은 많다. 귀신이 보이는 순간 혼자서 속절없이 흔들린다.


 우리가 흔들리는 순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홀로와 같이. 같이 흔들리는 때 가장 많이 경험하는 현상은 멀미다. 버스와 속도가 달라서, 배와 리듬이 달라서 멀미가 찾아온다. 단단한 땅을 밟고 같이 춤을 추더라도 발을 밟히기 일쑤다. 같이 흔들리면서 어긋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그에 비해서 홀로 흔들리는 일은 쉽다. 홀로 흔드는 순간은 흔들리는 사람도, 흔드는 사람도 가볍다. 홀로 탄 그네는 훨훨 날아간다. 훨훨 날아가고, 훨훨 밀고, 훨훨훨훨 날아가고, 훨훨훨훨 밀고. 그네에 타고 있던 사람은 어느새 공중제비를 돌고 있다. 갈수록 강해지는 발길질과 함께 훨은 끊임없이 증식하고, 마음은 제멋대로 요동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홀로 흔들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바깥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대수가 멋대로 혀를 자른 것처럼 보인다. 여러 겹의 일그러짐이 합쳐진 결과지만 드러나는 것은 한 겹의 미소에 불과하다. 그 사실이 우리를 더욱 흔들리게 만든다. 폭풍우 속에 정박하지 못한 배는 아무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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