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되지 않은 얼굴 위에서, 존재는 가장 솔직한 형태가

by Re나

미화되지 않은 얼굴 위에서, 존재는 가장 솔직한 형태가 된다.

Lucian Freud, 루시안 프로이드

<자화상>


“미화 없는 시선과 두텁게 쌓인 붓질로, 작가는 자신의 육체와 시간을 정면에서 마주한다. 닮음을 위한 초상은 사라지고, 노화와 피로가 켜켜이 남은 얼굴만이 화면에 남는다. 이 응시는 설명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으며, 다만 버텨낸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얼굴 앞에서, 인간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이 얼굴 앞에 서면, 우리는 한 인간을 본다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끝까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피부는 매끈하지 않고, 색은 조화를 이루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얼굴 전체에는 오래 눌러앉은 침묵이 있다. 이 자화상은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끝내 나를 떠나지 않은 시간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두텁게 쌓인 물감은 얼굴을 꾸미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매일의 피로, 잠들지 못한 밤, 반복된 사유들이 켜켜이 굳어버린 층처럼 보인다. 붓질은 단호하지 않고, 주저하며 되돌아온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이 그림이 그리고자 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 그 자체라는 사실을. 프로이드는 자신을 단번에 규정하지 않고, 끝없이 다시 본다. 그 반복은 집요하고,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다.

눈은 우리를 향해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통과해 어딘가 더 깊은 곳을 보고 있는 듯하다. 감정은 노출되지 않고, 표정은 해석을 거부한다. 이 얼굴에는 고백도, 반성도 없다. 다만 지금 여기, 이 몸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는 결의만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자화상은 친절하지 않다. 위로하지 않고, 공감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이 그림을 오래 붙잡게 만든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자화상은 말한다. 사유란 이해 하거나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시선을 거두지 않는 태도라고.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좋고 나쁨을 가르지 않은 채, 살아온 무게를 그대로 견디는 일이라고.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이 그림은 계속해서 우리를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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