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시작은 거창한 축복이 아닌, 어느 고단한 죽음 곁에서 소리 없이 찾아왔다. 600년 전, 추위 속에 몸을 뉘었던 개동지빠귀 한 마리. 그 작은 새가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대지에 남긴 팽나무 씨앗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할매'라 부르는 거대한 우주의 시작이었다. 한 존재의 소멸이 다른 존재의 발아가 되는 이 고요한 섭리 속에, 삶과 죽음은 마주 보고 선 두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팽나무 할매의 몸동작 하나하나에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생의 서사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볕을 피할 그늘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눈물을 쏟아내던 고해성사터였으며, 또 다른 생명에게는 고단한 날개를 접고 잠드는 안식처였다. 6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눈동자로 볼 때, 인간의 고통은 찰나의 진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매는 그 짧은 생들이 남긴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자신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들의 투박한 진심을 단 한 순간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600년을 버텨온 나무의 침묵 속에는 얼마나 많은 비명이 녹아 있고, 또 얼마나 많은 위로가 피어났을까. 뿌리는 깊은 땅속에서 이미 떠난 이들의 뼈를 어루만지고, 가지는 높은 하늘에서 이제 막 태어날 생명들의 노래를 미리 듣는다.
결국 삶이란, 나에게 주어진 이 유한한 '인간이라는 조건'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서는 용기이며, 동시에 그 고통마저 거대한 순환의 일부로 내어주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그 거대한 나무 그늘 아래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일 뿐이라고, 할매는 낮은 그림자로 우리를 다독인다. 내가 내지르는 오늘의 한숨 또한, 언젠가는 누군가의 등을 쓸어주는 깊은 나뭇결의 문장이 될 것임을 믿으며, 나는 다시 한번 이 피할 수 없는 생의 숙명과 조용히 눈을 맞춘다.
생의 황혼에서 마주한 대상이 다름 아닌 작은 새와 고목이라는 사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역사의 소용돌이와 거대한 담론을 날카롭게 파헤치던 그의 펜촉은, 이제 자연 다큐멘터리의 카메라 렌즈처럼 낮고 느리게 움직이며 개동지빠귀의 날갯짓과 팽나무의 호흡을 세밀하게 뒤쫓는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그의 문장이 이토록 서정적인 자연의 <할매>이야기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투쟁과 쟁취의 기록보다, 오히려 죽음이 삶을 먹여 살리고 삶이 다시 죽음을 품는 이 유구한 자연의 연대기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가가 긴 세월 팽나무 곁을 지켰던 수많은 이들의 애씀을 기록한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조건 자체와 오래 마주 서게 된다. 할매의 그늘 아래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네 삶이 결코 고립된 비명이 아니기를. 600년의 시간을 견뎌온 나무의 침묵이 그러하듯, 우리의 고단한 오늘 또한 거대한 생의 순환 속에서 누군가를 보듬는 한 줄의 나이테로 남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