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은, 『백의 그림자』를 읽고

by Re나


황정은 작가의『작은 일기』를 읽고 나서, 작가의 다음 책을 읽는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거리지 않았다. 그의 소설을 읽어야만 작가와 글 사이의 여백을,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를 완결성 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내게 책이 없었다면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의무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도 시간과 마음 들여 만나야 하는 이도 없기 때문인데, 그 모든 것을 책으로부터 얻고 있고 황정은의 책은 그중에서도 차분하고 사려 깊고 맑고 다정한 위로와 용기 담당이다.


이 소설의 세계는 고요한 회색 같다. 완전히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다만 삶이 언제나 회색의 농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명확한 해답보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게 하는 이야기. 황정은은 인물들을 통해 말한다. 우리는 늘 애매한 상태로 살아가고, 그 애매함이 곧 삶의 실제라고.

밝음에 가장 가까운 어둠, 혹은 어둠에 가장 가까운 빛.『백의 그림자』에서 ‘백’은 색이 아니라 상태다. 관계 역시 그렇다.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곁에 머문다. 큰 의미를 만들지 않고, 위로의 말을 급하게 꺼내지 않는다.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 함께 두는 태도가 이 소설을 지금의 시간으로 끌어오는 것 같다.

읽는 동안 마음이 조용해진다. 무언가를 깨달아서가 아니라, 굳이 깨닫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 때문이다.『백의 그림자』는 독자에게 메시지를 남기기보다, 상태를 남긴다. 형식을 유지하지 않고, 하나의 호흡처럼, 읽고 난 뒤에도 선명한 문장은 떠오르지 않지만, 분위기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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