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걀 똥구멍과 나무대가리
깨어진 그릇
1. 달걀 똥구멍과 나무 대가리
내 이름은 분홍이다. 엄마는 없다.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엄마는 나를 낳고 산후풍으로 끙끙 앓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내 엄마는 막지기였고 가분다리였다. 아버지도 없다.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아버지는 황소였다. 일만 하고 술만 먹고 엄마를 패는 일을 주로 하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았다. 큰엄마는 매일 우리 엄마 욕을 하면서 나를 때렸다. 나는 취미가 기절이었다. 큰엄마의 새파란 눈빛을 보면 오줌을 싸고 기절해버렸다. 부엌일이 하기 싫고 빨래도 하기 싫으면 나는 기절을 한다. 큰엄마의 새파란 눈빛을 상상하면 기절을 할 수 있었다. 큰엄마가 부작대기로 나를 때리면, 나는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쌀밥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상상을 했다. 속으로 따라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면 부작대기로 때려도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큰엄마가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다. 큰엄마는 엄마가 있는 하늘나라에 가면 안 되니까.
봄날이었다. 옆집에 사는 메리가 나를 불렀다. 입술은 빨갛게 칠하고 자기 엄마 색동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메리가 싫지는 않았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으니 싫고좋고도 없지만, 메리는 푸른 눈에, 하얀 얼굴에, 노란 머리에, 하얀 피부에, 늘씬한 키에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노꾸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래도 메리는 실실 웃기만 했다. 메리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분홍아, 딸기밭에 놀러 가자.”
딸기밭에는 동네오빠들이 풀을 뽑고 있었다. 메리는 실실 웃으며 딸기밭 고랑 사이를 뛰어다녔다. 오빠들이 잡으려고 하면 치마를 휘날리며 뛰어다녔다. 봄은 메리 치마처럼 휘날리며 지나가더라.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메리와 놀았다. 큰엄마 몰래 달걀을 훔쳐서 구멍을 뚫어 빨아 먹고, 쌀을 한 주먹 껍질 속에 넣고 불을 피워 구워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달걀을 깨어 먹을 때는 달걀 똥구멍을 깨어야 하는데 어디가 달걀 똥구멍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메리는 뾰족한 부분이라 했고 나는 납작한 부분이라 했다. 나는 화가 나서 메리에게 욕을 했다.
“아이노꾸야”
“메리메리 쫑쫑”
메리는 입술을 파르르 떨고 눈에서는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에는 푸른 눈알이 예쁘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날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갓땡, 갓땡”
나는 겁이 나서 말했다.
“달걀 똥구멍은 뾰족한 부분이다.”
“뾰족한 부분이 달걀 똥구멍이다.”
이렇게 말을 하니 메리는 화가 풀렸는지 실실 웃으며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메리 아버지는 파덜이라고 했다. 파덜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데 엄마가 파덜 찾으러 갔다고 했다. 메리와 나는 달걀 똥구멍을 깨어서 빨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빨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납작한 부분에도 구멍을 내고 조금씩 빨아 먹었다. 메리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달걀은 똥구멍이 두 개다. 뾰족한 똥구멍과 납작한 똥구멍. 이렇게 지랄용천을 하면서 놀고 있는데 하늘에 쌕쌔기가 지나갔다. 그때 메리가 자기 비행기라고 우겼다. 나는 내 비행기라고 우겼다. 나는 이번에는 지기 싫었다. 금방 지나간 비행기는 내 비행기이다.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큰엄마가 불렀다. 강가 수박밭 원두막에 가서 지키라고 했다. 강가 원두막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물고기가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차가운 느낌에 한참동안 허우적거렸다. 원두막에서 떨어져 강물에 빠진 것이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겨우 올라왔다. 여름은 허우적거리며 지나가더라.
가을날이었다. 메리가 며칠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큰엄마 몰래 살살 가보았다. 메리가 마당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메리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궁디에서 굵은 명주실이 줄줄 나오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물어 보았다.
“궁디에서 나오는 게 뭔데?”
메리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배가 아파서 석유를 마셨는데 거시가 죽어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메리 뱃속에서 나온 거시가 얼마나 많은지 작대기로 뒤적거려보았다. 희끄무레하고, 길쭉하고, 더럽고,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메리는 엄마가 파덜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파덜은 군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파덜이 메리에게 보낸 선물을 자랑했다. 사탕을 몇 개 받았다. 그리고 껌도 한 개 받았다. 나는 메리에게 받은 껌을 하루 종일 씹다가 벽에 붙여 놓았다가 까매질 때까지 씹었다. 밤에도 씹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보니 머리카락에 껌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깝다.
어느날 동네오빠가 메리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강둑길을 달려가더라. 미친듯이 달려가더라. 동네오빠와 메리와 미친오토바이는 강물속으로 들어갔다. 가을은 강물속으로 들어가더라. 강물속에는 물고기와 동네오빠와 메리와 미친오토바이가 있다.
겨울날이었다. 결혼을 했다. 남편 이름은 꾸눈이다. 육이오 때 미군이 흘리고 간 포탄을 가지고 놀다가 포탄이 터져서 애꾸눈이 되었다. 꾸눈은 오늘도 술을 먹었다. 나는, 꾸눈이 술을 먹으면 너무 무섭다. 얼마없는 살림살이도 박살이 나고 그릇도 깨어지고 옷도 찢어지고 깨끗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매일매일 육이오다. 나는 엄마가 보고싶어 ‘타박네’를 부르면서 울었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디매 울고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 못간단다 물이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 못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가지줄라 가지싫다 명태줄라 명태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그날도 옆집에서 보리쌀을 한 줌 얻어와서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씻고 있었다. 그런데 꾸눈이 뒤에서 내 엉덩이에 발길질을 했다. 나는 기절을 했다. 기절에서 깨어났는데 배가 너무나 아팠다. 아랫도리를 보니 피가 흘러나왔다. 신작로를 뽈뽈 기어서 도망을 쳤다. 몇 번을 까무러쳤는지 모른다. 엄마를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자갈길을 뽈뽈 기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하늘을 보니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입을 벌리고 은하수를 한 모금 마셨다. 은하수는 엄마 젖처럼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아픔도 사라졌다. 엄마는 은하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다가 또 기절을 했다. 잠시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는데 배가 너무너무 아팠다. 큰엄마의 새파란 눈빛을 상상했다. 기절을 했다. 큰엄마가 고맙다. 큰엄마 덕분에 기절 능력을 가지게 된 거니까. 기절직전 또는 기절에서 깨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절했을 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 기절 속에서는 큰엄마도 없고, 아픔도 없고, 나도 없다.
마산까지 뽈뽈 기어서 왔다. 약국이 보였다. 약국 앞에서 까무러쳤다. 약국 주인이 약을 주었다. 애기집이 터져서 피가 난 것이라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배 아픔보다 구멍난 빤스를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약국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질투했다. 약국영감님은 나에게 빨간 빤스를 사준 것뿐이다. 그런데 약국 영감님이 나를 건드리는 것으로 오해하고 숟가락으로 때리고 젓가락으로 찌르고 연탄부지깽이로 나를 찔렀다. 나는 주인아주머니를 좋아했다. 그래서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괴롭히는 것은 빨간 빤스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주인아주머니는 빨간 빤스가 싫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리라. 나는 쫒겨났다.
마산어시장에서 남이 흘린 어물을 주워다가 작은 좌판을 벌였다. 어시장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무시했다. 젊은 년이 남이 흘린 고기나 주워 판다고. 새벽에 나와서 남이 흘린 고기를 줍고 있었다. 그때 물고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도 기절을 하니?”
“우리들도 기절을 한단다.”
“우리는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면 세상 모든 소식을 알 수가 있단다.”
나는 문득 메리 소식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물고기에게 메리 소식을 물어보았다. 메리는 태평양을 건너가서 파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기절에서 깨어났다. 하늘에 별이 보였다. 새벽에 기절을 했는데 벌써 밤인가 보다.
옛날에 메리와 놀던 생각이 났다. 나무는 대가리가 어디인가를 두고 싸웠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나무 대가리는 하늘로 향한 부분이라 했고, 메리는 땅에 처박혀 있는 부분이라 했다. 메리는, 나무는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물을 빨아 먹고 있으니 자기 말이 맞다고 했다. 메리의 말을 듣고 나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도 대가리에 입이 달려 있으니 아무리 궁리를 해도 나무 대가리는 땅에 처박혀 있는 부분이라는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다음에 물고기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는 어느 부분이 대가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