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찌찌뽕과 우주물고기
깨어진 그릇
2. 찌찌뽕과 우주 물고기
라디오에서 장필순의 ‘푸른 눈의 친구에게’가 흘러나왔다.
푸른 눈이여 푸른 별이여
이 밤에 뿌려진 한 줄 검은 눈물
몸부림치다 해가 된 노란 얼굴
잠든 소녀여 푸른 눈이여
어느 여름날이었다. 메리와 나는 이파리 떼기 놀이를 하다가 똑같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면 ‘찌찌뽕’ 하면서, 서로 바라보고 깔깔거렸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서로 몰라보게 되었을 때, ‘찌찌뽕’ 신호를 보내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하였다. 장필순의 노래를 들으면 메리의 푸른 눈이 생각났다. 파덜 나라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람으로 돌아와 악수 나누길’ 기다리면서 찾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푸른 눈의 외국여자가 지나가면 쫓아가서 ‘찌찌뽕찌찌뽕찌찌뽕’, 졸졸졸 따라가면서 ‘찌찌뽕찌찌뽕찌찌뽕’ 이렇게 신호를 보냈는데 푸른 눈의 외국여자들은 모두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고 도망을 가버렸다.
나는 잠들기 전에는 매일 신호를 보낸다. ‘찌찌뽕찌찌뽕찌찌뽕’ 이렇게 신호를 보내다 잠이 들었다. 나의 주문은 ‘찌찌뽕’이다. ‘찌찌뽕’이 없었으면 나는 벌써 죽었을 지도 모른다. 너무나 힘이 들어 죽고 싶을 때에도 ‘찌찌뽕’하면 힘이 생겼다. 나는 쉬지 않고 ‘찌찌뽕’을 생각했고 속으로 외웠다. 앉으나 서나, 가거나 멈추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똥을 눌 때에도 오직 ‘찌찌뽕’만 생각했다. 이제 나는 ‘찌찌뽕’이 되었고 ‘찌찌뽕’이 내가 되었다. 사람은 자기만의 주문이 필요한 것 같다. 메리가 고맙다. 메리 덕분에 주문을 만들게 된 거니까. 메리도 나처럼 주문을 외우고 있을까?
꿈속에 물고기가 보였다. 어릴 적에 강물 속에서 본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무는 대가리가 어느 부분인가 물어보았다. 물고기는, 메리 말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나무는 몸은 여러 개지만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무들은 서로 소통이 잘 된다고 했다. 그리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은 나쁜 점도 있다고 했다. 은행나무가 불타면 소나무도 불타는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되니 소통이 잘되는 것은 나무들의 큰 슬픔이라 했다. 나는,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무들이 참 불쌍했다. 내가 나무들이 불쌍하다고 하니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좋은 것이라 하며, 우주전쟁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옛날에 천신들과 아수라들이 우주전쟁을 벌였어. 천신들과 아수라들은 힘이 비등비등하였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천신들이 후퇴를 하게 되었어. 천신들이 아수라에게 쫓겨 도망을 치다가 새들이 모여 사는 숲을 지나게 되었지. 그런데 천신들의 우주선 바퀴 때문에 새들의 집이 부서지게 생겼어. 그래서 천신들은 새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우주선을 돌려세웠지. 이것을 본 아수라들은 천신들이 반격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아수라들은 도망을 가고 우주전쟁은 천신들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었어.”
물고기가 나에게 말을 했다.
“전쟁은 전쟁으로 끝낼 수가 없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날 때 전쟁을 끝낼 수가 있는 것이지.”
“불쌍하구나 분홍아.”
“분홍아 불쌍하구나.”
물고기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다. 마음이 참 시원했다. 물고기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엄마도 불쌍하고, 메리도 불쌍하고, 꾸눈도 불쌍하고, 큰엄마도 불쌍하고, 아버지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고 모두 불쌍했다. ‘찌찌뽕’ 소리치면서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지쳐 웃음이 나왔다. 웃다가 갑자기 고민이 생겼다. ‘울다가 웃으면 궁디 털난다.’는데 궁디 털이 나면 우짜꼬 싶어 안절부절 못하다 잠이 깼다. 참 희한한 꿈이다. 답답하고 아프던 가슴이 상쾌해졌다. 가슴을 만져보았다. 가슴을 만지다 갑자기 희한한 생각이 떠올랐다. ‘남자들은 필요도 없는 젖꼭지가 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