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그릇(소설)

3. 아궁파톡

by 묘길 조길상

깨어진 그릇

3. 아궁파톡


어느 날부터 어깨가 결려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약국에 가서 파스를 사다가 뒷목에 발랐다. 어깨에도 몇 장 발랐다. 어느 순간부터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허리가 아픈 날부터는 움직이기 싫었다. 아스팔트에 붙은 껌처럼 방바닥에 붙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눈꼽만큼이라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약이라도 사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팔자를 생각하니 참 슬펐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진통제를 사다 먹었다. 누워 있을 때는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틀을 쉬다가 일을 하러 나갔다. 왜 돈은 벌어도 벌어도 항상 모자라는 것일까? 새벽부터 밤까지 식당에서 온갖 일을 해도 왜 돈이 모이지는 않을까? 여름에는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나는 내 몸 냄새를 모르는데 내 옆에 오는 사람들은 쉰내가 난다며 다시는 곁에 오지도 않았다.

식당에서 쫓겨났다. 나는 분노했고 분노가 내 앙가슴을 지배했다. 심장이 톡 튀면서 화가 시작되었고 내 맘을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분노하면서 적개심이 생겼고 고집을 부리면서 식당 주인에게 말대꾸를 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왜 남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몸이 아파서 이틀 일을 안 한 것이 큰 잘못입니까?”
“너무너무 인색한 것 아닙니까?”
“돈도 꼴랑 몇 푼 주면서 일만 시켜 먹고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의 들숨과 날숨이 멈추자 귓구멍에서 바람이 나오면서 굉음이 났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머리를 쪼개듯이 거센 바람이 머리를 내리쳤다. 나의 온몸에 큰 불이 일어났다. 나는 극도로 분노했고 모두 죽이고 싶었다. 기절을 했다.

기절에서 깨어났는데 분노가 사라졌다. 나의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 분노가 사라지고 나서,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죽이고 싶은 내 마음이 실현된다면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쁜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가장 많이 하는 나쁜 생각은 증오이며, 내 마음 속에서는 예리한 증오의 칼로 남과 나를 난도질 하며 피를 흘린다.

이렇게 내 마음 속에서 피를 흘리면 남도 피를 흘릴까? 내 속만 타는 것이 아닐까? 만약 나를 화나게 만들고자 남이 불쾌한 말을 했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화를 내어서 남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가? 내가 화를 내어서 남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고 혹은 고통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가 초래한 고통으로 당장에 나 자신을 먼저 불태울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 나는 남 가슴 사정을 모르고 남도 내 가슴 사정을 모른다. 나는 남 마음을 모르고, 남도 내 마음을 모르고, 심지어는 나는 내 마음도 모른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겉모습만 웃음으로 꾸미면서 위선자로 살기로 다짐했다. 나는 마음으로는 칼춤을 추면서 겉으로 표현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칼춤을 추는 것을 나만의 비법으로 삼기로 했다. 나는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고 속으로는 욕을 하는 것을 나만의 비법으로 삼기로 했다. 나는 이처럼 표리부동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자가 되기로 했다.

사람은 겉모습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의 속 마음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을 준 식당주인이 고맙다. 식당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니 용서가 되었고 증오가 사라졌다. 이렇게 남을 용서하니 나는 내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남을 용서할 때 가능한 것인가 보다.

나는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특히 여름에는 땀띠가 나서 온몸이 벌겋게 된다. 젖가슴 아래에는 항상 벌겋게 좁쌀처럼 작은 물방울이 생기고, 가렵고, 따끔거리고, 쓰리고 두드러기가 생겼다. 거울을 보면서 젖가슴 아래 좁쌀처럼 작은 물방울을 손톱으로 터뜨렸다. 작은 물방울을 터뜨리다 보면 재미가 있기도 했다. 여름에는 이삼일에 한 번씩 좁쌀 물방울 터뜨리기를 했다. 그러다가 따갑고 쓰라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면 터뜨리기 놀이를 멈추었다.

약국에 가서 땀띠 파우더를 사다 뿌렸다. 아기들이 사용하는 땀띠 파우더는 참 좋았다. 뽀얀 아기 그림이 있는 땀띠 파우더 통을 벌써 서른 개나 모았다. 젖가슴 밑에 파우더를 톡톡 치다가 갑자기 아기를 가지고 싶었다. 아기 궁디에 파우더를 톡톡 치는 상상을 하면 너무너무 행복했다. 나도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할 수 있을까? 약국에 아기 파우더를 사러 갔다. 약사가 나에게 말을 했다.

“아기는 몇 개월인데요?”

나는 내 젖가슴 밑에 땀띠가 나서 뿌리기 위한 것이라 했다. 약사는 내 가슴을 보더니, 가슴이 너무 크니 축소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가슴이 너무 크면 가슴 무게 때문에 목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고, 척추에 부담이 되어 허리도 아프고, 땀띠 때문에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슴 확대 수술보다 축소 수술은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슴을 축소하는데 돈이 더 많이 든다니 우스웠다. 가슴이 보석도 아닌데 작게 하는 것은 비싸고 크게 하는 것이 싸다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

나는 약사의 말을 듣고 두 가지 고민이 생겼다. 가슴 축소 수술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고,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하고 싶은데 축소 수술을 하면 아기에게 나쁜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낳지도 않은 아기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다음 생에는 젖가슴이 없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었다. 남자들이 필요도 없는 젖꼭지가 달려 있는 것은, 전생에는 여자였는데 가슴이 너무 커서 나처럼 고생을 했기 때문에 남자로 태어나기를 원하여 젖꼭지만 달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사람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젖가슴이 있는 사람은 여자, 젖가슴이 없는 여자는 남자.

나는 ‘찌찌뽕’ 주문을 바꾸었다. 이제 내 주문은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이다.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생각하면 힘이 생겼고, 희열이 생겨났고, 행복했고, 괴로움도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지고 평화로웠다. 이제는 남이 나에게 화를 내라고 시비를 걸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나는 표리부동을 실천했다. 항상 속 마음은 감추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좋은 말을 했다. 이렇게 겉으로 좋은 말을 하니 사람들도 나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우스웠다. 내 속의 칼을 모르는 사람들이 바보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표리부동 놀이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내 맘도 변해버렸다. 좋은 말을 자꾸 하니까 내 맘도 좋게 변해버렸다. 생각을 따라서 말을 하지만 말을 따라서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마음에 둔다.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계속해서 생각하면, 배가 고플 때 밥을 보는 것 같은 희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계속해서 생각하면, 밥을 먹을 때와 같은 행복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계속계속 생각하면 마음 속과 마음 밖이 평화로 가득했다. 그리고 내가 사라져 버렸다. ‘나 없다.’

먼저 돈을 벌기로 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고,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하고, 아기를 다 키운 후에 가슴 축소 수술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식당에 돈벌이를 하러 갔다. 식당일은 힘들고 힘들었지만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다. 돈을 벌면 사분의 일은 저금을 하고, 사분의 일은 생활에 쓰고, 사분의 이는 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 ‘아기 궁디 파우더 톡톡’, ‘아궁파톡’, ‘아궁파톡’ 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항아리만한 불알을 가진 사람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걸어 갈 때에는 자기 불알을 어깨에 걸치고 가고, 앉을 때에는 자기 불알 위에 앉았다. 그런데 독수리와 까마귀와 솔개가 달려들어 불알을 부리로 쪼아대고 발톱으로 찢어대자 그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참 이상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