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언브로큰(UNBROKEN, 깨어진 적이 없는)
깨어진 그릇
4. 언브로큰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푸른눈의 외국여자들이 들어왔다. 나는 신호를 보냈다. ‘찌찌뽕찌찌뽕찌찌뽕’ 그 중에 한 여자가 푸른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찌찌뽕’ 신호를 보냈다. 푸른눈은 더욱 커지면서 ‘찌찌뽕’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릴 적에 메리와 약속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입술이 두툼한 푸른눈의 여자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툼한 입술을 움직여 ‘찌찌뽕찌찌뽕찌찌뽕’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합창을 했다. ‘찌찌뽕찌찌뽕찌찌뽕’ 이렇게 노래를 하면서 깔깔거렸다.
입술이 두툼한 푸른눈의 여자는 나와 함께 우리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입술이 두툼한 푸른눈의 여자는, 미국사람이며 자기 이름은 안젤리나 졸리라 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색동치마저고리를 입고 뛰어다니는 꿈을 자주 꾸었고, 꿈속에서 본 색동치마저고리가 한국옷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된 것이라 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말과 한국역사를 스스로 공부했다고 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한국역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고통받은 한국사람들과 육이오 전쟁으로 고통을 당한 한국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온몸으로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안젤리나 졸리는 과거에 메리였으며 메리의 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식당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작은 찌짐집을 열었다. 찌짐집을 열기 전에 돈을 모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돈을 벌면 사분의 일은 저금을 하고, 사분의 일은 생활에 쓰고, 사분의 이는 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찌짐집을 열기 전까지는 사분의 일은 생활에 쓰고 사분의 삼은 저금을 하기로 마음 먹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돈은 전대를 만들어서 차고 다녔다. 이렇게 돈을 가지고 다니다가 전대가 뽈록해지면 금을 사서 가지고 다녔다. 빤스에 작은 주머니를 달아서 금을 넣고 다니다 남몰래 빤스속 금을 만지는 것은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금을 스무 돈쯤 모았을 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주머니 속에 있던 금을 똥통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즐거움이 똥통속으로 사라지고, 희망이 똥통속으로 사라지는 슬픔으로 고통스러웠다. 미칠 것 같았다. 며칠을 슬퍼하다가 다음부터는 은행에 저금을 하기로 했고 이렇게 저금한 돈을 찾아서 작은 찌짐집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처음에는 ‘일대일점육일팔오’였는데 나중에 ‘황금분할’로 바꾸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매운맛 찌짐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어시장에서 나는 싱싱한 물고기, 오징어 등을 넣은 찌짐도 좋아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나보다 장사를 잘 했다. 어시장 사람들도 입술이 두툼한 푸른눈의 여자가 찌짐을 뒤집는 것을 좋아했고 찌짐가게는 나날이 번창했다.
가게를 쉬는 날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안젤리나 졸리의 몸에는 문신이 여러 개 있었다. 용그림문신도 있었고 死문신도 있었다. 그리고 ‘Quod Me Nutrit Me Destruit’가 새겨져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삶이 힘들어 죽고 싶을 때에는 몸에 문신을 새긴다고 했다. 그러면 괴로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고 했다. 나는 삶이 힘들어 죽고 싶을 때에는 주문을 외운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주문 두 가지를 말해주었다. 처음에 주문은 ‘찌찌뽕’이었고 두 번째 주문은 ‘아궁파톡’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찌찌뽕’ 주문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살게 되었고 ‘찌찌뽕’ 주문을 만들어준 메리가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Quod Me Nutrit Me Destruit’가 무슨 뜻인가 물어보았다. 한국말로 ‘몸과 마음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파괴적이기도 하다.’는 뜻이라 했다. 좋은 말인 것 같은데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안젤리나 졸리의 등에 새겨진 死문신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안젤리나 졸리도 ‘아궁파톡’이라 소리치면서 울었다. 이렇게 안젤리나 졸리와 내가 끌어안고 울고 있으니 목욕탕에 있던 할머니들은 영문도 모르고 같이 울어주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안젤리나 졸리에게 돈을 주면서 안아주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 했으나 할머니들의 자비심을 느끼고 돈을 받았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돈을 벌면 삼분의 일은 쓰고, 삼분의 일은 남에게 주고, 삼분의 일은 저금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식당일을 할 때 찌짐집을 열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했었다. 아주 거창한 계획을 세웠고 맛에 대한 나름의 연구도 했다. 내 깜냥으로 정리한 것은 아래와 같다.
‘돈을 벌면 사분의 일은 저금하고, 사분의 일은 생활에 쓰고, 사분의 이는 재투자한다.’
‘사람은 감각적 욕망에 따라서 움직이는 물질적 존재이고, 감각적 욕망은 느낌이 중요하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 물질, 느낌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를 움직이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식당일을 하고 있고 남이 칭찬을 하면 좋아한다.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을 할 때는, 수용해야 할 것은 수용하고, 참아야 할 것은 참고, 피해야 할 것은 피하고, 제거해야 할 것은 제거해야 한다.’
‘일을 할 때는, 의미를 알고, 방법을 알고, 적당함을 알고, 시기를 알고, 사람들을 알면 그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일을 할 때는, 한 부분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한 부분만을 집착하게 되면 하나로써 백 가지를 폐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고집불통은 나와 남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극단적 생각을 피하고 유연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일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하면, ‘이것은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으로 일어나는가?’ 깊이 생각하고, 문제 해결의 좋은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다. 그래서 ‘뭔데 그래서 어쩌라고’를 생각하면서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말을 할 때는, 사실인 말을 하고, 진실인 말을 하고, 서로 이득이 되는 말을 하고, 말할 때와 아닌 때를 가려야 한다.’
이런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찌짐집을 열기로 했다. 맛있는 찌짐을 만들어서 팔면 나는 돈을 벌어서 좋고 남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좋을 것이다. 이렇게 찌짐을 구워 팔기 위해서 맛에 대한 연구도 했다.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떫은맛 등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맛의 종류는 무한하다. 여섯 가지 기본 맛을 조합하면 육팩토리얼로 칠백이십 가지나 되고, 농도에 따라서 맛이 다르고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맛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한한 맛이 있는데 여러 가지를 섞어서 감칠맛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이 나는 오미자 엑기스를 사용하기로 했고, 떫은 감을 소금물에 익혀서 떫은감 엑기스도 만들어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감칠맛 나는 육수도 만들었다. 이렇게 하는데 참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준비를 한 후에 좋은 밀가루에 육수와 오미자 엑기스와 떫은감 엑기스를 넣고, 쪽파와 담치를 넉넉하게 넣어서 찌짐을 구워서 먹어보았다.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하고 맛은 있는데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떫은맛, 감칠맛 등 모든 맛이 다 들어 있는데 왜 부족한 느낌이 들까? 케일맛처럼 쓴 느낌으로 짜증이 났다. 여러 번 찌짐을 구워서 먹어 보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실패한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찌짐을 구웠다. 이번에는 쓰라린 기분 때문에 쓴맛이 나는 케일을 듬뿍 넣어보았다. 아주 맛있었다. 여섯 가지 기본맛을 1이라 할 때 쓴맛은 1.6185였다. 나는 이때, 주도하는 맛이 있어야 맛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맛도 황금분할일 때 가장 좋은 맛인가보다. 그래서 손님이 여섯 가지 맛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안젤리나 졸리와 나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재미 중에서 돈버는 재미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손님들도 맛있는 찌짐을 먹고 행복 에너지를 얻었다. 손님들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맛을 선택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설렘과 긴장 속에 있는 남녀는 신맛을 주문했고, 달달한 사랑을 하는 남녀는 단맛을 주문했고, 이별의 슬픔 속에 있는 젊은이는 짠맛을 주문했고, 불안함과 답답함 속에 있는 사람은 떫은맛을 주문했고, 실패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쓴맛을 주문했고,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은 매운맛을 주문했다. 나는 여섯 가지 맛의 채소와 과일 등을 항상 준비하였고 손님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다. 힘든 줄 모르고 찌짐을 뒤집었다. 그리고 돈도 많이 벌었다.
어느 날 안젤리나 졸리가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의 삼분의 일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안젤리나 졸리가 참 멋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참 맛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멋있는 것은 맛있는 것이고, 맛있는 것은 멋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돈을 벌면 ‘삼분의 일은 쓰고, 삼분의 일은 남에게 주고, 삼분의 일은 저금을 하리라.’ 생각하였다. 멋있게 맛있게 살기로 다짐했다.
안젤리나 졸리에게서 편지가 왔다.
분홍이에게,
나는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어. 캄보디아에 처음 갔을 때에는 큰 충격으로 고통스러웠어. 인간의 잔인함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어. 가슴에 분노가 차올라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어. 그리고 우울해져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끙끙 앓다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듣고 현실을 수용하게 되었고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어. 나는 인간의 폭력을 직면하면서 각성하게 되었어.
‘Quod Me Nutrit Me Destruit’ ‘몸과 마음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파괴적이기도 하다.’ 이 말은 몸과 마음이 성장하거나 충만해지는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거나 기존의 상태를 깨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예를 들어, 운동을 할 때 근육이 강해지려면 먼저 작은 손상이 일어나고, 그 후 회복하면서 더 튼튼해지게 되지. 또,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때로는 힘든 일을 겪으며 이전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어. 이런 점에서 ‘자양분’이 되는 과정이 반드시 편안하고 순탄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는 ‘파괴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성장과 충만함은 때때로 아픔과 변화의 과정을 수반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어.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나를 살렸어. ‘인생은 늘 깨어지지만 깨어진 적이 없었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을 영화로 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제목은 <언브로큰(UNBROKEN)>으로 정했어.
분홍아, 분홍분홍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랄게.
찌짐 굽던 날을 그리워 하는 안젤리나 졸리 보냄.
안젤리나 졸리의 편지를 읽고 나의 인생도 되돌아보았다. 나의 인생도 깨어진 인생이었다. 그렇지만 엄마와 메리와 주문(呪文)과 안젤리나 졸리와 돈 등이 나의 힘이 되었다. 나도 깨어진 적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이연실의 ‘찔레꽃’이 흘러나왔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꿈을 꾸었다. 엄마가 찔레꽃 속에서 나와서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의 품속에서 나는 슬픔과 괴로움과 두려움이 모두 사라지고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엄마는 우주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주인들은 꽃 속에 살고 있어. 하나의 꽃이 피고 지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피고 지는 것이란다. 내가 살고 있는 찔레꽃 우주는 지는 시기에 도달했어.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나는 찔레꽃이 지면 엄마는 어디로 가는가 물어보았다.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다가 인연이 닿는 꽃에서 살아간단다.”
“꽃을 찾아서 날아가다 항아리만한 불알을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어. 그 남자는 포로들을 새처럼 쪼아대고 괴롭히는 전쟁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 했어.”
“벌은 자기가 자기를 벌주는 것이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란다.”
언브로큰. <끝>
*작가 후기
<깨어진 그릇>은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감동받았던 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창작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돈을 벌면 사분의 일은 저금하고, 사분의 일은 생활에 쓰고, 사분의 이는 재투자하라.(니까야에서)”는 말씀이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중생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염려해주시는 부처님의 자비심에 무한 감사드립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깨어지고 부서지는 인생이지만 부처님의 말씀처럼, 부처님의 말씀같이, 부처님의 말씀으로 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자기만의 주문(呪文)도 만들고, 멋있게 맛있게 살면 좋겠습니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忘
罪忘心滅兩俱空
是卽名謂眞懺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