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 불통
비가 오도다. -본질적 불통
얼마 전 학생들과 시 수업을 할 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빗물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학생들은 이 물음에 여러 가지 답을 했다. 계절에 따라 다르다. 그날 기온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정확한 온도는 알 수가 없다. 7도다. 등등의 답이 있었다. 나의 답은,
“오도다.”
내가 “오도다”라고 말한 이유는, 비가 내릴 때 창밖을 보면서 ‘비가 오도다’라 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비가 내릴 때, ‘비가 오도다’라 말하지 ‘비가 칠도다’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비는 오도다.
이러한 말하기를 언어유희라 한다. 언어유희에서는 말을 듣는 사람의 지적인 작용이 먼저 이루어지고, 다음에 정서적 작용이 일어난다. 이해를 해야 웃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업시간에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설명을 듣지 않은 학생은 웃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런 학생들은 친구들이 웃을 때는 일단 같이 웃는다. 그리고 짝지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이해가 되면 그때서야 진짜 웃는다. 이처럼 진짜 웃기는, 이해가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계속 가짜로 웃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감정은 지적인 작용을 바탕으로 한다. 지적인 작용을 담당하는 머리와 정서적 작용을 담당하는 가슴은 항상 같이 작동을 하는 것이다. 시를 읽을 때도 이해를 해야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은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말을 해서 상대방과 소통을 하고 공감을 얻고 그리고 감동을 나누어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해서 공감을 얻고 감동을 먹이기 위해서는 지성과 감성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감성은 지성과 분리된 것이 아니며 감성은 항상 지성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아야 상대방에게 감동을 먹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공감을 얻고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이해를 바탕으로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키는 말하기 방법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 불통’의 상태에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 두 명이 함께 백화점 쇼핑을 갔다. 매우 예쁜 아주머니는 옷도 사고 반찬거리도 사고 구두도 사고 명품 가방도 사고, 그냥 예쁜 아주머니는 간단한 반찬거리만 사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냥 예쁜 아주머니는 승용차 트렁크에서 자기 짐만 내리고 트렁크 문을 닫았다. 그런데 매우 예쁜 아주머니는 짐이 많아서 머리를 트렁크 안에 넣고 자기 짐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매우 예쁜 아주머니는 머리를 12바늘 바느질하고, 그냥 아주머니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 남을 의식하는 것 같지만 그냥 예쁜 아주머니처럼 무의식적으로 트렁크 문을 닫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불소통에서 벗어나 소통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공감 받기를 원하고 감동을 먹으려 한다. 그런데 소통, 공감, 감동은 참으로 어렵다. 그 이유는 사람의 본질은 불통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사람은 소통과 공감과 감동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불통 상태에서는 남의 머리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나의 머리를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소통해야 한다. 특히 불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머리와 가슴을 분리하지 않는 말하기 방법이 좋을 것이다.
고민 :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칠 때, 시를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문제를 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