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를 넘어 초분자의 시대로
오른손꼴과 왼손꼴
-‘분자를 넘어 초분자의 시대로’를 읽고-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거울>
이상은 <거울>에서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가 악수를 할 수 없음을 섭섭해 하고 있다. 만약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하여 ‘거울 속의 나’를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면 악수를 할 수 있을까?
초분자화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분자인지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아마도 현실세계에 나타난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악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른손을 거울에 비추면 왼손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거울에 비친 오른손을 현실세계로 가져오면 왼손이 되는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은 악수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상의 시에서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이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가 억지로 화해를 시도한다면 화해가 독이 되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지도 모른다. 이것은 오른손과 왼손은 맞잡을 수는 있지만 악수를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른손과 왼손을 맞잡기 위해서는 손을 억지로 돌려야 한다. 이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억지로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은 우리 삶에 독이 되기도 한다. 초분자화학에서 연구된 바와 같이 거울상이성질체의 결합은 치명적인 독이 되어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상이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가 악수를 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손들과 악수를 해야 한다. 우리가 악수를 할 수 있는 손은 거울 바깥에 많이 있다. 친구의 손을 잡을 수도 있고, 부모님의 손을 잡을 수도 있다. 마음만 낸다면 세상의 모든 손들과 악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세상과 화해를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와 화해를 시도한다. 그러나 오른손꼴과 왼손꼴의 화해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상의 절망은 더욱 깊었을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은 악수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합장을 할 수는 있다.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열에너지를 교환하여 정신에너지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도를 할 때 합장을 하는 것은, 내면의 힘을 고양시키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닮은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닮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른손과 왼손은 다음과 같이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오른 + 왼)손 = 오른손 + 왼손”. 이 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손’이라는 공통점과 ‘오른, 왼’이라는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닮았다는 말은 ‘공통점과 차이점’, ‘같음과 다름’을 그 의미망에 포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닮았다’는 말은 이런 점에서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한다.
우리의 삶은 모두 닮았다. 이러한 닮음을 실현하는 방법이, 세상을 향한 악수와 내면을 향한 합장이 아닐까? 닮았다는 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다. [읽은 책, <지식의 최전선> 김호기 외 52인 공동집필, 한길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