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 짜기(수필)

시간의 주인으로

by 묘길 조길상

시간표 짜기 - 시간의 주인

십 년이 넘게 시간표를 짰다.
이번 겨울에도 역시 시간표를 짰다.
시간표 작업은 힘이 드는 일이다.
고맙다는 소리는 없고 원망만 돌아오는 일이다.
그래서 작업을 끝낸 후에는 항상 허전하다.

시간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기초 작업을 해야 하는데 준비해야 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한 학급의 수업 시수는 몇 시간으로 할 것인가? 몇 개 반을 편성할 것인가? 어떤 교과목을 가르칠 것인가? 교과목별로 담당 교사는 누구인가? 교과목별 시간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업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할 것인가? 하루에 수업은 몇 시간을 할 것인가? 연수와 개인사정으로 수업을 하지 못하는 날짜가 있는 교사는 누구인가? 보충수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은 누구인가? 반편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출석부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초 작업이 끝나면 시간표를 짜기 시작한다. 이번 겨울 방학 때에는 900시간을 짰다. 1반부터 9반까지 100개씩 모두 900개의 빈 구멍에 채우기를 했다. 1번 교사 조모 선생님은 1반부터 9반까지 5시간씩 모두 45시간을 집어넣어야 하고, 9번 교사 김모 선생님은 1반부터 9반까지 5시간씩 모두 45시간을 집어넣어야 하고, 20번 교사 임모 선생님은 6반부터 9반까지 8시간씩 모두 32시간을 집어넣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교사의 시간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집어넣기를 할 때는 주의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원칙을 정해서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표 짜기의 원칙은 날짜별 시간을 적절히 배분해서 집어넣을 것, 3시간 연강이 되지 않도록 고려할 것, 교사의 빠지는 날짜를 고려할 것 등이다. 원칙을 정하지 않고 시간표를 짜면 처음에는 쉬우나 나중에는 어렵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삶의 원칙을 정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쉬우나 나중에는 어렵다.

이번 겨울에는 기초 작업을 한 후에 900개의 빈 구멍을 바라보면서 3분간 명상을 했다. 그리고 인문 과목과 자연 과목을 교차로 집어넣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빠지는 날짜가 많은 교사를 집어넣었다. 빠지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이다. 앞에 빠지는 교사도 있고, 뒤에 빠지는 교사도 있고, 중간에 빠지는 교사도 있고, 퐁당퐁당 빠지는 교사도 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이번에는 시간표 작업을 하면서 두 가지 실수를 했다. 그 하나는 뒤에 빠지는 교사를 앞에 빠지는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멍 채우기를 하다가 주변의 훤화(喧譁)에 이끌려 집어넣은 수를 잘못 헤아린 것이다. 그래서 한참 동안 시간을 허비했다.

900개의 빈 구멍 중에 800개쯤 집어넣고 나니 점점 집어넣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헷갈리는 빈도가 많아졌다. 빈 구멍은 적은데 힘은 더 들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릴 때는 참으로 많은 구멍이 보인다. 경우의 수가 참으로 많은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빈 구멍은 줄어들고, 노안이 오면 빈 구멍을 찾기도 힘들고, 혹 엉뚱한 구멍에 집어넣어서 욕을 보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의 구멍을 채우다보면 마지막에는 스스로 한 구멍에 들어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구멍은 아아아(亞亞亞)!

십 년이 넘게 시간표를 짰다. 이번 겨울에도 역시 시간표를 짰다. 시간표 작업은 힘이 드는 일이다. 고맙다는 소리는 없고 원망만 돌아오는 일이다. 그래서 작업을 끝낸 후에는 항상 허전하다. 그런데 시간표를 잘 짜주어도 고맙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스스로 짠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 나의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남이 나의 삶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 어찌 내가 내 시간을 남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십 년이 넘게 시간표를 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