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탐구
해를 그리는 방법과 용수 - 진리탐구
해를 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앞의 것은 ‘이것은 해이다’라고 돌출시키는 방법이고, 뒤의 것은 ‘이것은 해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해가 아닌 부분들을 채우는 방법이다. 앞의 것은 돌출, 뒤의 것은 후퇴라 명명한다. 연필로 두 가지 해를 그려보면 돌출보다 후퇴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심지어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후퇴는 해가 아닌 부분들을 계속해서 칠해야 한다. 만약 네모가 없다면 ‘이것은 해가 아니다’를 무한히 반복해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아니다’보다는 ‘이다’에 익숙해 있는 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사용하는 손으로만 글을 쓰고, 생각도 그렇게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해를 그리는 방법과 말하기 방법은 서로 닮았다. ‘이것은 어떤 것이다.’라고 주체를 내세우기도 하고, ‘이것은 어떤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무한히 반복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무고개 놀이는 우리의 사고 과정을 놀이의 형태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무 번의 ‘아니다’가 반복되고 나면 못 맞춘 것으로 하고 다시 놀이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것은 어떤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스무 번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무한반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서도 작품 자체를 중심으로 작품비평을 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완전하다는 전제 아래, 구조를 분석하고 요소들의 인과 관계를 따지고, 부분들의 합은 총합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런 관점을 구조주의, 형식주의라 하며 절대주의적 관점이라고도 한다. 구조주의는 질서를 중시하며 질서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 이런 질서는 서열화와 관련이 되며 무질서에 대해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사고, 질서, 서열화, 폭력성 등은 대체로 남성 중심의 문화와 관련이 되며 선진문화, 중심부 문화와도 관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적 범주로는 우아미와 관련이 될 듯도 싶다.
그리고 작품과 관련된 요소를 중심으로 비평을 하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 현실, 독자와 관련되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고, 현실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를 따지고, 독자의 기대지평을 중심으로 작품 해석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나의 문학 작품은 세계와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은 타당하다. 이러한 생각을 탈구조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의 문학 해석 방법, 문학적 관습을 해체하고 구조주의적 권위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탈구조주의는 탈권위주의, 탈질서, 탈남성주의, 서열화의 해체를 통한 수평적 질서, 주변부 문화 등을 특징으로 하게 된다. 미적 범주로는 골계미와 관련이 될 듯도 싶다.
해를 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나는 ‘돌출’의 방법만 고집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반성을 통해서 ‘후퇴’도 해를 그리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돌출’의 방법을 지양하고 ‘후퇴’의 방법을 지향하는 사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근대 혹은 전근대적 삶의 양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양상일 것이다. 불교에서 용수 보살은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논리로 진리에 이르렀고, 니체는 생각의 계보를 따져서 중세적 사고를 부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이다’보다는 ‘아니다’를 외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닐까?
옛날에는, TV화면 속에서 하얀 눈 속에 기차가 지나가면 기차표 고무신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또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가면 말표 신발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말표 신발’이나 ‘기차표 고무신’을 사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과거는 흘러갔으니 없다. 즉 과거의 질서는 해체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질서가 현대를 지배하고 있다. 분자화된 개인 혹은 해체된 주체들은 과거의 강요를 거부하고 있지만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상호주체를 내세울 때는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한 충돌이 사회 전체의 보편적 현상일 때는 그 고통이 아주 클 수밖에 없다. 상호주체성을 인정하면 충돌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정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동일한 조건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정자로서의 영웅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다.
해를 그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해를 그리기를.
그리하여 온 세상이 진리로 빛을 발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