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 김현
매년 '이렇게 추운 적이 있었나?,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나?'라고 되묻는 날들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 수치가 이야기해주는 데이터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체감하는 온도의 차이는 나날이 커져 갑니다. 건강이 최고라면서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관심도 그쪽으로 흘러갑니다. 2월 중순을 향해 가는 지금, 방학 중 출근일이 다가옴에 따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여느 때처럼 그동안 찾아두었던 문장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마주한 문장이 눈에 걸립니다.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중
얼핏 보면 비약처럼 느껴지지만 저에게는, '인문학'을 동경하고 공부해본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저 받아들이고만 싶은 그런 문장입니다. 작가의 문장에 한 글자만 추가해 읽는다면 '문학' 대신 '인문학'이라고 읽고 싶습니다.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학을 공부했던 저는 새내기 시절부터 도서관에 자주 찾아가고는 했습니다. 역사를 공부할 사람이라면서 역사를 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 역사란 무엇인지, 내가 핀을 꽂고서 설정하고 싶은 역사 공부의 방향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역사학자의 시선과 관점이 나의 생각에 부합하고 잘 어울리는지를 찾고 싶었고, 찾아낸 뒤로는 그 선배 학자의 뒤를 따라 걸어보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꿨던 것 같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고, 아직 제대로 공부해보지도 않은 학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허세, 그리고 현학적인 것을 좋아하는 태도 등은 '대학생이라면, 사학과에 다니는 학생이라면'이라는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된 제 나름의 도구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보냈던 시간에 사학도로서의 시간을 보낸 것을 더하니 어느 정도는 저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이 다듬어지고 깨지고 부러지고 이어 붙여지는 과정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흔들리지 않는 신념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역사학에 대한 어울리지 않던 고민들을 따라가면서 철학, 문학, 정치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 뿌리를 뻗어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겠다는 다짐보다 생겨난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보니 거쳐야만 했던 '간이역'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어찌 저찌 이어지고 끊어지는 길들을 따라가다보니 인문학과 역사학에 대한 나름의 관점과 시선은, 가벼울지언정 깨지기는 어려울 만큼 단단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단편들이 때로는 쌓아온 신념에 상처를 내기도 하지만 굳어진 생각의 자리까지 뿌리 뽑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역사가 왜 필요한가'라는, 그 쓸모와 유용성, 필요성, 실용성 등을 부단히 강조하려고 애를 썼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부딪혀야 하는 것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단단한 신념 또는 가치관이었습니다. 지금은 애써 노력하지 않습니다. 유용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은 것에서 유용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그것을 강변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보다 항상 쥐고 있다보니 쓰임이 있더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소개만 합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다가올 때면 올해는 무슨 말과 활동으로써 아이들에게 역사 교사의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다보니 흩뿌리는 눈발처럼 주절주절 생각이 길어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