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거지." - 김연아 선수
학생을 가르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떻게 공부해야 역사 성적이 오를 수 있나요?"와 같은 공부와 관련된 '노하우'를 묻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주기가 어려워 살짝 주저하고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질문을 한 아이들을 '중학생'이라고 부른다면 이 질문은 괜히 기특하게 느껴지지만, '15세, 16세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면 이 질문은 어른으로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천진난만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 아이들에게 공부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그런 공부를 시켜야 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이 조금 더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특별하게 잘 하거나 좋아하는 게 뚜렷하지만은 않았던 저에게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할 것'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마법 같은 답변은 미처 준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마저도 월등하게 공부를 잘 했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답은 해줘야겠으니 교육학적으로나,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나 꽤나 보편적이고 평범한 답변들을 해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사로서 명확하게 답을 주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으나 하루하루 나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느라 이 고민은 잠시 미뤄두기를 반복한 것이 수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유명 배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의 'JUST DO!' 연설을 접하게 됐습니다. 영어의 동명사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재밌는 반응과 함께 이 연설은 현장의 청중과 그 맥락을 떠나 한국 사회에서도 꽤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자기 의심과 불안에 갇힌 이들에게 던지는 '그냥 해!'라는 강력한 메시지는 배우의 진정성 담긴 연기에 힘입어 더욱 많은 이들의 가슴을 때리고, 울렸습니다. 한때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을 보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이 연설은 이미 마쳐졌지만 다른 영상에서도 꼭 삽입되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해당 연설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다가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부정적인 질문들과 막연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을 얻었습니다.
한편,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설이 준 울림 전에, 어쩌면 그 즈음일 수도 있는 어떤 시기에, 저는 이미 비슷한 문장의 힘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놓치고 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김연아 선수가 "스트레칭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김연아 선수는 특유의 미소를 띠면서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습니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의 제가 접한 그 장면은 그닥 인상에 남지 않았었나봅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쌓인 부정적인 감정의 노폐물들이 축적이 되고 나서야 그 말의 힘을 실감했으니 말입니다. 해야 할 것 앞에서 이런저런 불필요한 고민과 생각을 하기보다 지금, 여기에 놓인 것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해야 한다고 해석되는 저 짧은 문장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정적으로 토해내듯 던져준 연설보다 간결하면서도 더 큰 힘을 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명연설과 명언은 충분히 가치가 있고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설과 인터뷰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고민을 해결하는 데 조금 더 적합하게 느껴진 것은 김연아 선수의 '말 한 마디'였습니다.
저는 요즘 아이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되면 조금은 주저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다가 결론부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김연아 선수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냥 해!'라고 답을 합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제 가슴에 남겨준 문장의 맥락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공부와 헬스를 나름대로의 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해온 저의 삶을 '감히' 끼워넣어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의 질문에 부합하는 해답으로서의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의, 자기에게 적합한 공부'라는 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마저도 불명확하고 막연하니 아이들 속이 터지는 게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명확한 것은 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나에게 맞는 공부'를 찾기까지 헤매고, 해보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로만 생각하고 고민할 게 아니라 '그냥 해봐야' 나에게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안다고 말입니다. 사실 공부 자체보다도 헬스와 게임 등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면 아이들이 조금 더 이해해주는 눈치를 주긴 합니다. 결론적으로 학생들이 '그냥 해!'라는 말이 담고 있는 힘을 눈치채는 때가 와서야 제 답이 답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정답' 또는 '해답'을 내놓기를 요구하는 풍토가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매일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략하고, 내 눈 앞에 놓아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답을 찾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답을 찾기까지의 노력과 과정을 겪은 사람만이 아는 그 '가치'는, 오늘날 사회의 풍토와 분위기에 앞으로도 휘둘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