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아직 두 달이나 남은 아이가 아빠에게 받을 자기 생일 선물이라며 책을 가지고 왔다. 선물을 자기가 가져온 것은 상식에 대한 반전이었다. '대디북(Daddy Book)'이라고 하는 아빠에 관한 질문이 한 권의 두께로 만들어진 책이다. 200의 질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마지막에 자녀에게 보내는 수기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좀 무게가 있는 숙제인 셈이다. 물론 질문은 선택이나 단답형이고 길게 써야 하는 것은 많지 않으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질문의 깊이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변해간다.
아빠의 추억과 청춘 그리고 꿈에 관한 문제를 풀어가면서 내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피터팬에서 ‘아빠는 꿈을 서랍 속에 넣어 둔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어린 시절 꿈보다도 살아내기에 급급했고 유난히 병치레로 고등학교를 4년 다닌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본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타향살이가 서울이라는 가까운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 대학 시절을 혼자 보냈고 인생의 전환점들을 겪었던 20대를 회고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제 이십 대를 시작하는 딸과 비교하면서 아이에게도 그러한 변화와 격정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새롭게 깨달았다.
사랑과 결혼에 이르면서 감추어야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뭔가 모를 허전함과 아쉬움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저귀를 갈아보았느냐는 질문이나 즐거웠던 순간, 자기에 대한 느낌, 자기로 인해 기뻐했던 일,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감동했던 순간 등 많은 좋고 기쁜 일도 있지만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질문은 사실을 넘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답을 적어 나간다.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도 자기의 아빠가 되어주겠느냐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당근’이라고 써 내려간다. 자기와 닮은 점에서도 아빠를 너무 닮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관계를 비롯하여 딸아이의 아빠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 나 스스로 던진 질문에 깊고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내 인생을 설계하고 이 땅으로 보낸 창조주를 기억하지 않고서야 이에 대한 답을 말할 수 없었다. 갑자기 ‘장례 영구차 뒤에는 이삿짐 트럭이 따라오지 않는다.’라고 말한 배우 덴젤 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 축사가 생각이 났다. 과연 나의 인생은 마지막 날까지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길 것이며 어떤 일을 마지막으로 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여진처럼 다가왔다.
이 외에도 아픈 상처, 기뻐했던 일, 기뻤던 일 등 내 일생을 조목조목 조사하듯 물어보는 질문에 인생을 잘못 살았다면 이런 책을 가지고 오는 자녀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와 필담도 아니고 출판사에서 깊게 연구한 질문을 가지고 간접 대화를 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를 바라본 귀한 기회였다. 숙제를 마치는 시점에서 ‘자녀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와 이처럼 깊은 대화를 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슬픔이 다가왔다.
일 년이 좀 넘은 시점에서 나와 딸아이는 거의 동시에 에세이를 출간했다. 나는 [너 그러면 행복하겠니]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썼고 딸아이는 [나의 마음에게]라는 경험보다는 생각과 느낌을 썼다. 59세의 아빠와 19세의 딸이 바라본 세상도 다르고 다루는 주제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도 확연히 달랐다. ‘아빠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요!’라는 고백에 감동했고 여고생인 딸과 뽀뽀를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주어진 행복이다.
딸아이가 두 번째 에세이[살아가려면 뭐라도 사랑해야겠습니다]를 출간했을 때 아빠의 이야기가 거의 없어 서운해하였는데,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요즘 아이들의 반 정도가 이혼한 가정이고 남은 가정 중에 반 정도는 소위 ‘졸혼’ 상태라고 한다. 그런 상황 이외에도 아빠로부터 상처를 입은 독자들이 많다고 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런 이유로 아빠와 좋은 관계를 쓰거나 아빠를 자랑하면 이것은 이차적인 가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20여 년 전 미국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목회하시던 분이 하신 말이 기억난다, ‘부모 세대가 너무도 쉽게 이혼과 재혼을 하여 가정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볼 정도로 가정에 집착한다.’라는.
자녀들과의 대화가 외계어로 인해 차단되고 핸드폰의 문자를 통한 대화만이 유일한 대화의 창이 되어버린 오늘은 차라리 고전적이라고 볼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AI를 친 부모보다 더 선호한다는 어느 조사 결과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증강현실과 메타 버스 그리고 딥페이크 등과 같이 기존의 경험과 상식으로 예측이 안 되는 세상이 펼쳐지는 시대에 결국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이라는 특수 공동체 내의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인간’을 포기해야 할 날이 온다고 두렵게 예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