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하루

아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당신에게

by 서초동 김원장


내 고객들 중에는
조금 더 특별하게,
조금 더 신경 써드리는 몇 분이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장애 아이와 함께 오시는 가족들이다.

예약 전화가 오면
나는 일부러 시간을 넉넉하게 비워 둔다.
다른 손님들과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여느 손님들과 똑같이
시간을 맞춰 예약을 잡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가족들의 표정을 보고 알게 됐다.

아이의 행동과 소리 때문에
혹시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그분들은 머리를 하는 내내
보이지 않는 미안함을 안고 있었다.

아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다른 손님의 얼굴을 먼저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고단한 삶일 텐데,
내 돈을 내고 머리를 하러 와서도
눈치를 봐야 한다니.

그 마음이 얼마다 불편하고 속상할까.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을 바꿨다.

매출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 편한 게 먼저다.

그래서 그분들의 예약은
충분히 시간을 비워 둔다.

아무도 겹치지 않게.

물론 그날 매출은 조금 줄어든다.
하지만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해도 괜찮다.

어차피 그 시간은
우리만의 세상이니까.

고객님이 눈치를 보면
나도 마음이 조급해지고
결국 일도 서두르게 된다.

하지만 겹치는 손님이 없으면
나도 한결 편안하다.

그리고 그 편안함은
그대로 고객님에게 전해진다.

스타일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해서 좋다.

장애 아이를 둔 고객들 중에
유독 마음이 쓰이는 한 분이 계신다.

정신지체와 뇌병변이 있는 아이를 둔 분으로,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첫째는 비장애인이고
둘째가 장애가 있다.

첫째 아이는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 더 많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참 밝게 자랐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먼 훗날
부모님이 떠나고
형제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동생의 삶을
부모님 대신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 아이의 미래를 떠올리면

응원하는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걱정이 남는다.

얼마 전,
더 마음 아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객님이
머리카락이 반쯤 빠진 채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고객님, 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항암 치료받고 있어요.
유방암이래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50대에 암이라니.

그날도 항암 치료를 받고
빠지는 머리를 정리하러 오신 길이었다.

그리고 바로
센터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했다.

아픈 아이를 둔 엄마는
아플 시간도,
누워 쉴 시간도 없다.

슬퍼할 틈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혼자 병원 다니고,
아이를 데리러 가고,
집에 가서는 가족 식사까지 준비한다.

불평도 원망도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머리를 더 정성껏 손질해 드리는 것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멀리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이분이
부처님이고 예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분에게는
더 이상 상처받을 일도,
속상할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 마음이란 참 이상하다.

나는 건강하고
내 아이들도 건강하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한 삶인데
나는 왜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조급하게 살아왔을까.

알면서도
자꾸 잊는다.

이분이 다녀가신 날이면
내 마음의 먼지가 조용히 씻겨 내려간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오늘의 나의 하루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그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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