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전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

그날, 마음이 손끝까지 닿지 않았다.

by 서초동 김원장


친정 오빠가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무렵이었다.

오빠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위중해졌고,
신경 써야 할 일들도 끝이 없었다.

병간호는 병간호대로 열심히 해야 했고,
수험생인 두 아이의 뒷바라지와,
그리고 생계가 걸린 미용실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매일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던 어느 날,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셨다.

지역의 유명 맘카페를 운영하시던 분으로,
그때는 이미 그 역할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어찌 되었든,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소중한 단골이었다.

평소 하시던 펌 스타일로
늘 하던 대로 해드리면 되는,
내게는 익숙하고 어려운 시술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무언가 잘못되었다.

펌이 나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양해를 구하고 바로 다시 시술에 들어갔다.

결과는… 또 실패였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하고, 세 번째 도전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실패였다.

같은 날, 연속으로 세 번의 펌.
그리고 세 번 모두 실패.

손님께서는
“원장님, 힘드셔서 그런 거니까 괜찮아요.
오빠 간병 잘하시고요.”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지만,
그날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부끄럽고, 난처하고,
무엇보다 죄송했다.

맹세코 대충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왜 그날따라 그렇게 안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오빠의 병세에 대한 걱정이
내 마음 한가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가위를 잡고 집중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온통 병원에 가 있었으니 잘될 리가 없었다.

마음이 닿지 않은 손끝이
제대로 움직일 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는 먼 길을 떠났고,
그 손님도 그날 이후 다시는 뵙지 못했다.

시술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지만,


더 아픈 건
만회할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저
그리움과 죄송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 살면서 또다시 그런 어려운 순간이 온다면,


삶이 나를 흔드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더 단단해지고 싶다.

마음이 흔들려도
손끝만큼은 흔들리지 않도록,

나의 자리까지 찾아온 사람의 시간을
결코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도록.

고객님,
그때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날의 저는
너무 엉망이었고,

다시 찾아와 달라는 말조차
감히 드릴 수 없을 만큼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날 제게 건네주신 따뜻한 마음은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어디에 계시든
아프지 마시고,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30년째 같은 머리,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