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같은 머리,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중입니다.

by 서초동 김원장

1999년에 미용에 입문을 했으니

2026년 올해로 27년째다.


3년만 더 지나면

전문용어로 이 바닥생활(?) 30년이 된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록,

양재동 부부.


인턴과정 2년을 빼고도

이분들과의 인연은 정확히 25년

몇 년만 더 채우면

어느덧 ‘30년 단골’이 된다.

10년 넘은 단골들조차
이 부부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20대에 처음 만나
어느덧 50대를 넘어가는 시간.

이제는 고객을 넘어
서로의 생을 증명해 주는 소중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갓 디자이너가 되어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펐던 시절부터
함께해 준 분들이다.

당시 아이 없이 살던 딩크족 부부는
어느 날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그 아이는 이제

미국에서 공부하는
사랑스러운 숙녀가 되었다.

방학 때마다 나를 찾아오는 아이는
머리를 하러 오는 건지,
우리 집 고양이들을 보러 오는 건지 헷갈릴 만큼
동물을 사랑한다.

수의사가 꿈이라는 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 또한
내게는 커다란 선물이다.

우리의 시작은 참 우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명 디자이너가 없으면
순서대로 ‘바를 정(正)’ 자를 표시해 가며
손님을 받던 시스템이었다.

마침 그날
그분들의 차례가 내 순번이었다.

그 작은 우연이
도곡동에서 서초동으로,
또 지금 이곳까지
세 번의 이전을 거치는 동안에도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와 주는
‘찐 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은 이사로 거리가 꽤 멀어졌음에도
그분들은 여전히 나를 찾아온다.

남편 고객님은
20대부터 지금까지
헤어스타일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아내분 역시

상고 단발에서 길이만 조금씩 달라질 뿐
늘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하필
도전을 좋아하지 않는 디자이너를 만나
수십 년 동안 다른 스타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셨다.

그래서 가끔은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중간에 한 번쯤
다른 미용실에 다녀오실 법도 한데,
이분들은 정말 단 한 번도 외도를 하지 않으셨다.

그분들이 오면
나는 세상 제일가는 수다쟁이가 된다.

사는 이야기,
아이 이야기,
신앙 이야기…

낮에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창밖이 어둑해질 때까지 이어진다.

한때는 이분들을 따라
진지하게 개종을 고민했을 만큼,
그들은 늘 한결같고
순수한 신앙의 향기를 풍기는 분들이다.

가장의 책임을 묵묵히 다하는 다정한 남편과
그를 깊이 존중하는 아내.

어쩌면 이제는
스타일 변신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해진 관계

고객과 디자이너를 넘어
인생의 동행자가 된 사이일지도 모른다.

“원장님, 건강해야 해요.
그래야 오래오래 내 머리 해주시지.”

“고객님도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그래야 저도 돈 벌죠."

껄껄 웃으며 주고받는 농담 속에는
짙은 진심이 담겨 있다.

예약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설레고 기다려지는 사람들.

30년 가까이 고집해 온 같은 머리.

처음엔

디자이너와 손님이었고,


그다음에는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동지가 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결혼과 임신,
아이의 성장,
이사와 직장,
그리고 깊은 믿음과 고민들…

시간을 함께 지나오며
나는 이제 안다.

그분들이 바꾸지 않은 것은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나는 참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매번 같은 머리만 해드리면서도,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어
문득 송구해진다.

나의 최장수 고객님.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이분들과 함께
기쁘게 늙어가고 싶다.

고객님

우리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희어져도,
제 손끝이 조금씩 느려져도,


그때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만나요.

우리가 나눌 수다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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