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좀 올리세요.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호통

by 서초동 김원장


5개월에 한 번씩
웨이브 파마를 하러 오시는
서래마을 고객님이 계신다.

전직 기자 출신에
지금은 카피라이터로 활동하시는 분.

외모만큼이나 지성과 배짱이 넘치는’
삶의 굵직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내가 은근히 닮고 싶은 참 멋진 분이다.

그분은 의자에 앉자마자
기분 좋은 호통부터 터트리신다.

“원장님, 머리를 이렇게 예쁘게 해 주면 어떡해!
지금도 멀쩡한데 지겨워서 왔잖아.
이래서 먹고살겠어?”

한 번 하면 손질이 너무 편한 데다
시간이 지나도 스타일이 죽지 않는다며,

좀 더 자주 오게 만들어야지
이렇게 오래 가게 하면 어떡하냐고 웃으며 야단을
치신다.

“진짜 원장님은 고수야, 고수!"

스스로 옮겨 적으려니 낯간지럽지만,
이건 단순히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분이 나를 꾸짖는 이유가
너무나 고맙고 행복해서
그 온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고객님은 오실 때마다
가격 인상을 강력하게 권고하신다.

아니, 거의 협박에 가깝다.

“제발 가격 좀 올려요!
내 주변은 다 4~50만 원씩 주고 머리해.
여기가 너무 저렴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실력을 의심해서 못 온다니까?”

가격이 실력의 전부는 아니지만,
기술의 가치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애정 어린 충고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니에요, 고객님. 지금도 충분해요.”

결국 우리는 만날 때마다 기묘한
‘가격 실랑이’를 벌인다.

손님은 올리라 하고,
주인은 안 올린다 버티는 희한한 풍경.

실랑이 끝에 고객님은
정해진 시술비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억지로 내 손에 쥐여준다.

우리는 대게
깎아주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더 얹어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부자든 아니든
돈 앞에서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분은
늘 마음을 더 얹어주고 가신다.

또 어떤 손님은
“여긴 또 너무 싸서 문제야.”
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런 ‘기분 좋은 화풀이’가
내 미용실에서는
종종 벌어진다.

그 야단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채찍이다.

혼나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사실 그분이 억지로 쥐여주는 것은
몇 만 원의 지폐가 아니다.

내 기술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내 삶에 대한 뜨거운 응원이다.

“이래서 돈 벌겠어?”

걱정 섞인 그 투박한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오히려 벅차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걱정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한 번 불타오르는 삶도 좋겠지만,
나는 이 따뜻한 인연들과 가늘고 길게 걷고 싶다.

언젠가는 가격을 올릴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이 기분 좋은 실랑이를,
이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다.

고마운 고객들 덕분에
나는 내 직업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오늘도
내 가위가 경쾌하게 춤을 추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서초동 고양이 미용실 1호 커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