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 대학생이 쓰는 <사랑의 하츄핑> 후기
지난 8월, 2등신의 짧은 몸체를 가진 ‘티니핑’들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사랑의 하츄핑> 영화는 누적관객수 120만 명을 넘기며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고, ‘하츄핑’이라는 이름은 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며 대중의 뇌리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점은 본 영화가 2020년도부터 시작된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극장판이라는 것이다. TV 시리즈로 확보한 어린 연령대를 주 타겟층으로 잡고서 제작한 영화임에도, ‘아동용 영화인데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며 20대 청년*과 30대 ~ 40대 학부모에게도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여기에 속한다.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는 극장 속, 부모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옆자리의 아이는 부모의 낯선 모습에 당황하는⎯그런 흥미로운 장면에 간단한 질문을 던지며 파고들어 가본다. 그들이 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티니핑이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삭막한 성인들의 감수성에 따뜻한 순풍을 불러일으켰을까?
앞으로의 본문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사랑의 하츄핑>에 열광하는 이유를 미학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그 과정으로 우선 아동문학 이론과 연결 지어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본 영화가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되었음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애니메이션 기법과 스토리텔링 기법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사랑’이라는 가장 무거운 단어를 가장 조심스레 담아낸 그 이야기에 함께 파고들어 보자.
<사랑의 하츄핑> 줄거리를 분석하기에 앞서, 본 영화가 아동문학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기에 동화의 특징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흔히 알고 있듯 동화(童話)는 어린이를 위한 예술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삼아 그 시기에 가질 법한 고민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것. 그리하여 동화를 접한 어린이가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동화의 목적이 된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동화는 성인의 예술이다.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어린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심하는 건 어른의 몫이기에, 아동문학은 어른이 ‘어린이의 시선’에 맞춰 몸을 쪼그리는 이해의 장이자, 사회의 냉엄함을 겪어온 기성세대가 후대에게 하고픈 말을 건네는 가장 조심스러운 편지가 되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맥락으로 <사랑의 하츄핑>을 돌아보자. 본 영화를 아동문학이라 일컫기엔 무리가 있으나, 아이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시도 자체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사랑.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소중하게 다룰 그 마음 말이다.
이모션(emotion) 왕국의 로미 공주는 단짝 ‘티니핑’을 찾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한다. 이 세계에는 10살 생일이 되기 전까지 2등신의 작은 마법 생명체, 티니핑과 '단짝'을 맺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 로미 공주 또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여기저기를 수소문하며 수많은 티니핑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자신의 ‘단짝’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나만의 티니핑을 찾지 못해 실의에 빠진 로미 공주. 그녀는 울적한 표정으로 궁중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낡은 티니핑 도감을 발견한다.
마법처럼 펼쳐진 도감. 그 속에는 핑크빛 양 갈래 머리카락과 왕방울처럼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사랑의 하츄핑’이 있었다. OST <처음 본 순간>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로미는 하츄핑이 바로 자신의 단짝임을 확신한다. 로미는 하츄핑이 멸망한 옆 왕국에 갇혀 있다는 정보를 듣고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저주받은 티니핑과 악당 트러핑까지. 로미를 가로막는 수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이를 모두 이겨내고 결국 하츄핑과 단짝이 되어 사랑의 힘으로 멸망한 왕국을 구하게 된다.
이런 동화 같은 줄거리 속에서 수많은 어른이 의문을 품는 지점은 바로 로미가 하츄핑을 처음 본 순간이다. 로미는 한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단짝을 처음 본 대상(그것도 책에 삽입된 사진으로만 보았다!)으로 정하고, 이후 그를 구하기 위해 저주받은 티니핑이 득시글한 옆 왕국으로 향한다. 그런 로미의 행적을 지켜보고 있으면, 소개팅 상대를 정할 때 얼굴만 보는 친구를 걱정하듯, 그녀에게 하고픈 말이 입에서 맴돈다. 로미야. 상대의 나이는, 직업은, 가치관이나 기타 결점 사항은 확인해 봤어? 뭘 믿고 그렇게 목숨 바쳐가며 하츄핑을 만나려 하는 거야. ……그래서 상대도 네가 좋대? 하물며 몇 번 연락하다가 맞지 않으면 바로 정리할 수 있는 소개팅 상대와 달리 로미의 경우에는 '평생의 단짝'이지 않나.
이 지점에 멈춰서 한번 생각해 본다.
도대체 로미는 하츄핑의 무엇을 보았던 걸까.
무엇을 보았기에 이토록 자신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영화 속에서 두 가지 종류의 관계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는 로미가 하츄핑에게 행하는 ‘조건 없는 관계’이다. 상대가 그 자체로 좋기에 이유 없이, 분별없이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단짝이 되자며 손을 건넨다.
둘째로는 멸망한 옛 왕국의 국왕이 리암 왕자의 짝꿍, 트러핑에게 행한 ‘조건뿐인 관계’이다. 국왕은 족보도 없는 외지 출신 트러핑이 아들의 짝꿍이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느 날 트러핑에게 "리암이 너를 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며 트러핑을 성 밖으로 쫓아낸다. 믿었던 짝꿍에게 배신을 당한 트러핑은 ‘저주의 티니핑’이 되어 왕국을 멸망시키고, 유일한 친구 하츄핑을 인간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성 꼭대기에 가둔다.
영화에서 확인한 이 관계성은 플롯을 지탱하는 두 가지 기둥이 되어, 종래에 하나의 메시지로 발화한다. 본 영화를 요약하면 ‘조건뿐인 사랑’ 때문에 멸망한 왕국, 그곳에 향한 로미 공주는 ‘조건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하츄핑을 구하고 왕국을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대립하는 항목(조건뿐인 사랑)을 통해 미학적으로 '조건 없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성공적으로 표현했기에, 영화의 제목인 <사랑의 하츄핑>이 참으로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앞서 밝혔던 동화의 의미와도 이어진다. "동화는 어른이 아이에게 전하는 편지." 즉, 어른이 가장 고심하며 아이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예전에는 어른들도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했다. 그 시절 뒷골목, 또는 놀이터에서 동갑내기를 만나면 서슴없이 함께 떠들며 놀았다. 땅거미가 질 즈음엔 손을 흔들며 내일 또 보자고 말했다. 그것은 어렸기에 가질 수 있는 추억이자, 순수한 만남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며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관계가 생겨날수록 그런 만남은 점점 사라져 갔다. 타인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보단, 나를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우리는 '조건 없고 분별 않는 사랑'은 아름다운 동시에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안다. 사리 분별과 손익을 따지며 형성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타인을 만날 때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며 상대에게 ‘경계심’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 웃으며 말을 걸으면 우선 '사이비인가?' 생각한다. 몇 년 지기 친구 사이어도 자신의 자존감을 챙기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한 개인이 단체의 정서와 맞지 않으면 우선 배척하고 거리를 둔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기가 버거운 게 아닐까? 망가진 거미집 같은 일상에서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뒤섞여 있다. 이런 차가운 콘크리트 정글을 뚫고, 우리는 조용히 극장으로 향한다.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들 틈에 파묻혀 <사랑의 하츄핑>을 보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그때 그 시절의 '사랑'이 극장에서 소환된다.
결국 어른들은 <사랑의 하츄핑>이라는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어른이 되고서 경계심을 지니고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지금만큼은 조건 없이 분별없이 타인을 사랑해도 된다고. 그것은 지금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기에 더 소중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말
- 필자는 군필이 아니지만, 군필 대학생이 하츄핑 후기를 쓴다고 하면 웃기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 아마 내후년쯤 군대에 갈 것 같다. 갔다 오면 이 글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 되겠지?
- 본 평론은 2부로 나누어, 다음 글에는 기법적으로 영화를 분석해보려 한다. 아이의 집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연출적인 노력과 어른의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기 위한 말조심까지. 영화의 디테일적인 부분을 함께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