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by 록유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안방에는 작은 문갑이 하나 있었다. 문갑 두 번째 서랍에는 동전 통이 들어있었다. 원래 약이 들어있던 약통인데 약을 다 먹고 나서는 아버지께서 동전을 넣어두셨다. 동전 통에는 1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이 가득 들어있었다. 한 웅큼 꺼내도 잘 표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물으셨다.

“너 혹시 여기 동전 통에서 돈 가져 간 적 있나?”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사실 과자 사먹을 잔돈이 필요할 때 가끔 동전을 가져갔었다.

순간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니요.”

하지만 내 눈빛은 흔들렸고 아버지는 그 눈을 보셨다.

아버지는 다시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돈이 필요할 때도 있을 거고 그러다보면 100원, 200원 가져갈 수도 있다. 말을 하고 가져가야 하지만 어쩌다 말 못하고 가져갈 수도 있지.”

아버지는 다 아시면서 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거다. 솔직히 말할 기회.

“아니요. 안 가져갔어요.”

나는 기회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옷처럼 내 말은 헝클어졌고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죄송합니다. 가져갔습니다. 과자 사먹었습니다. 잘못했어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거의 한 시간 동안 나를 얼르고 타이르며, 내가 솔직하게 말할 기회와 시간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무슨 고집인지 고개를 흔들며 ‘아니요.’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욱더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저지른 거짓말에 내가 빠져버린 것이다. 번복할 수가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 나가서 일 봐라.”

아버지는 포기하셨는지 나가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째 아버지 표정은 웃는 듯 보이셨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다 아시고,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나에게 실망을 하셔야 하는데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방에서 나오며 의아해했다.

‘뭐지? 내가 잘한 것이 있나?’


독립운동가가 나오는 뮤지컬을 보며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독립운동을 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거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대에 살았다면 고문을 당하기도 전에, 책상만 탁! 내리쳐도 무서워서 비밀을 줄줄 다 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겁이 많고 용기가 없는 나인데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나는 굳은 심지를 보여드렸네. 단지 선택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택하긴 했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삼각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