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감기에 걸려 열에 들뜬 나는 하루 종일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전국에 독감이 유행하고 모두들 골골거릴 때도 쌩쌩하던 내가 전날 밤늦게까지 찬 바람을 쐬었더니 덜컥 감기에 걸려 버린 것이다.
친구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화로 깔깔 웃음을 짓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친구는 나랑 똑같이 감기에 걸려 누워 있다고 했다. 둘 다 꼼짝없이 열에 취해 이마는 뜨겁고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는 누워서 시름시름 앓는 목소리로, 온종일 아무 데도 못 가고 누워 있어서 무료한 마음을 달랠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기약을 챙겨 먹으라는 다정한 인사말을 나누고 감기가 나으면 얼큰한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며 전화를 끊었다.
포근한 이불을 목 위까지 올리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으니 감기약 기운에 취해 자꾸만 잠이 왔다. 자다 깨다 반복하며 누워 있었는데 몸에서는 자꾸만 열이 나서 기운이 없었다. 이대로 몸이 땅속 저 밑까지 꺼져버리는 듯한 상상에 빠지며 꿈을 꾸었다. 몽롱한 상태로 누워 있는데 방문이 살짝 열렸다. 누군가 싶어 슬며시 눈을 떠보니 아버지께서 방으로 들어오신 것이었다. 아프다고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겨드렸는데 앓고 있는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방으로 들어와 보신 것이다.
“괜찮나?”
아버지는 마른 목소리로 이불을 만지작거리셨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일어나야 하나 계속 누워 있어도 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일어나 앉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계속 누워 있었다. 그 순간, 얼굴에서는 열이 후끈후끈 나는데 갑자기 차가운 얼음이 쏟아지는 듯 이마가 차가워졌다. 한겨울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몰아치듯 찬 기운이 내 이마를 감쌌다. 아버지의 거칠고 뭉툭한 손이 내 이마에 얹어졌다. 아버지는 손을 내밀어 이마의 열을 재어보셨다. 으레 열이 날 때면 차가운 물수건을 얹어 열을 내리곤 했었는데 아버지의 차가운 손은 물수건을 대신했다. 아버지의 손길로 열이 조금 내린 내 이마는 시원해졌다.
“약은 챙겨 먹었나? 이불 꼭 덮고 방 따뜻하게 해라.”
무뚝뚝한 듯하지만 다정한 말씀을 남기시고 아버지는 방을 나가셨다. 나는 취했던 잠에서 깨어나 말똥말똥한 눈을 뜨고 아버지의 손길을 더듬어 기억했다. 차가운 손길. 하지만 그 차가운 손은 펄펄 끓어오르는 열을 잠재웠다. 다정한 손길.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그 손은 고목처럼 거칠고 메말랐지만, 소나무가 끈적끈적한 송진을 안고 있듯 끈끈하고 깊은 속정을 품고 있었다.
겨울이 오고 찬바람이 부는 시린 날이 되면 차갑지만 따스한 그날의 손길이 떠오른다. 방안에서 혼자 감기에 몸을 떨어가며 앓고 있는 딸내미가 안쓰러워서 방문을 열어보시던 아버지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마음에 열이라도 재어 보고 싶으셨나 보다. 누군가 아프거나 열이 나곤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볼에 손을 대보거나 이마에 손을 얹어본다. 따끈따끈하거나 열이 많이 나거나 우리의 손은 그 무엇보다도 정확한 체온계가 되어 사랑의 온도로 열을 재어 본다. 마음으로 재어보는 그 온도는 걱정과 정성 어린 손길과 진심으로 데워져 알맞은 체온을 찾아간다.
나는 오늘도 차가운 그 손길이 그립다. 거칠고 버석버석한 손은, 뭉툭하고 투박한 그 손은 보드라운 내 이마에 내려앉은 아버지의 서툰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