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1년 차의 결론: 까칠함 뒤에 숨은 성장 가능성
기관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창업기업 대표들을 만난다.
어떤 대표는 “정말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반대로, 어떤 대표는 회의 때마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지고,
요청한 문서조차 “왜 이런 형식이어야 하죠?”라고 되묻는다.
처음엔 당연히 순종적인 기업이 좋았다.
프로그램 운영이 정말 편해진다.
과업 요청하면 바로바로 제출하고, 일정도 잘 맞춰준다.
기관 보고도 수월해지고, 담당자에게도 칭찬받기 좋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조금씩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팀이 진짜 성장할까?
기관 용역 운영을 하다 보면
협조적인 기업 = 과업이 편해지는 기업
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이런 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특징을 보이는것 같다.
요청한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다
일정 변경에도 불만 없이 따른다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컨설팅을 ‘정답’처럼 여긴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못 하고 조언을 기다린다. (극소수)
이런 태도는 기관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편하다.
문제가 생겨도 쉽게 조정된다.
AC 입장에서도 스트레스가 적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이런 팀일수록 시장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렇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라는 말이 잦은 팀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판단을 AC나 멘토에게 위탁하고, 스스로 리스크를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잘 끝나지만,
프로그램 이후의 성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반면, 까칠하고 까탈스러운 기업을 만나면
기관 과업은 지옥이 된다. (진짜 미친다....)
문서 포맷에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프로그램 일정에 태클을 건다
모든 피드백을 다 반박해본다
이유 없는 절차나 불필요한 과업을 그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기관 운영에서는 이런 팀이 문제 기업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담당자들도 이런 팀을 부담스러워한다.
AC인 나 역시 처음엔 힘들었다.
하지만 과업이 종료된 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은 단순히 까탈스러운 게 아니라,
자기 사업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자기 아이템의 본질을 알고 있다
외부 의견을 참고하되,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한다
사업 비전이 명확해 작은 것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건 저희 사업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처음엔 이 태도가 진상처럼 보이지만,
곧 깨닫게 된다.
이들은 시장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AC로 일하며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늘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
“지금 당장 과업이 잘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성장할 팀은 따로 있다”
순종적인 팀은 과업이 너무 잘 맞춰진다.
기관도 만족하고, 보고서도 깔끔하게 작성된다.
하지만 그 팀의 시장 성장 가능성을 떠올리면
의외로 확신이 들지 않는다.
까탈스러운 팀은 과업 진행이 참 어렵다.
때로는 갈등도 생기고, 설명해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팀의 미래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이 팀이 결국 살아남을 것 같다’는 느낌.
나는 이 감정이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확신한다.
까탈스러움은 결함이 아니라 성장의 징후다.
까탈스럽다는 건
스스로 사고하고
질문하고
판단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거부하고
자신의 사업에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다.
순종적인 기업은 운영은 편하게 해주지만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반면 까탈스러운 대표는
부딪히고, 논쟁하고, 개선하면서
보이지 않는 내적 신뢰감이 쌓이는 것 같다.
사실 과업을 진행하다보면 까탈스러운 대표는 정말 '극소수'다.
대부분 기업 대표들은 우리의 요청을 잘 들어주고
일정을 잘 맞춰주고
협조도 잘 해준다.
그런데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과업 진행중에
갑자기 까탈스러운 대표가 불현듯 출현한다.
99% 기업이 대부분 협조적이지만
1%의 까탈스러운 기업 때문에 과업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그런데 지금은
내년도에는 이러한 기업을 만나보고 싶다.
올해 과업을 다시 돌이켜보면
이러한 기업이
"전설의 포켓몬이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프로그램에서는 골칫거리일지 몰라도,
시장에서는 끝까지 살아남을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AC가 결국 ‘회수’를 만들어야 한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팀은
편안한 팀이 아니라 성장할 팀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묻는다.
“나는 과업을 위해 팀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성장과 결과를 위해 팀을 만나고 있는가?”
내 답은 점점 명확해진다.
나는 앞으로도 까탈스러운 대표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까탈스러움은
미래의 성공과 맞닿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