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4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9시가 넘었는데도 길가는 여전히 한산한 분위기였다. 쉬는 날이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딘가로 발걸음은 향했다. 집에서 출발한 지 20분이 지나고 큰 도로변에 있는 7층 건물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의 4층은 바로 나의 목적지이다. 어떤 사람을 만날 건지 몇 명을 만날 건지 궁금함과 긴장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번 모임은 처음이지만 사실 나는 꿈에서 벌써 다녀왔다. 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자기 앞의 노트북 화면에 몰입하며 피아노 연주하듯 손가락은 빠른 속도로 타자를 하고 있었다. 긴 테이블 끝에는 검은 뿔 태 안경을 쓴 중년 남성 편집장이 독수리와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자님들, 기자님들, 오늘 회의의 내용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편집장의 말이 들리자,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손이 멈추고 고개를 편집장을 향해 돌렸다. 편집장은 사람들을 둘러본 후에 이어서 말했다.
“오늘은 여러분이 쓸 신문기사의 주제를 정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주제를 쓰시는 지, 왜 쓰시는 지를 한 명씩 발표하세요. ”
기자들은 서로 누가 먼저 말할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회의실 안에는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들리는 정도로 조용해졌다. 10초를 기다려도 발표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집장은 갑자기 말했다.
“천웨 기자님, 이번 신문 기사는 무엇을 쓰실 겁니까?”
일부러 편집장의 시선을 피했지만, 하필 아무 준비도 없는 나를 부를까. 솔직히 나는 기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라서 무엇을 써야 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단 배우려는 마음으로 여기에 왔는데, 편집장에게 모르겠다고 말하면 혹시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온각 비난과 질책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긴장했다. 갑자기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전화 오는 소리가 아니라, 시계 알람의 소리였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다 꿈이었다는 것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꾸던 꿈을 회상하다가 어느새 나는 이미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깊은 심호흡을 하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입구에 세워 놓은 표시판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표시판을 따라 어렵지 않게 모임 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시작 전이라 모임 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 미리 도착한 외국 여성 몇 분이 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니, 아마 다 나처럼 처음으로 여기에 온 사람들인 것 같다. 그때 안경을 쓴 여성분이 다가와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안녕하세요. 천웨입니다.” 긴장해서 그런지 갑자기 목소리가 쉬었다.
“반갑습니다, 천웨님.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10시가 되면 회의 시작할게요. ”
나는 앉는 분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빈자리에 앉았다. 책상에 놓인 것을 보고 혹시 여기에 잘못 들어오지 않았나 라는 의심이 들었다. 테이블 위에 맛있는 것이 가득하였다. 피자, 치킨, 쿠키, 커피와 음료수 등. 기자 모임으로 알고 왔는데, 왠지 다과모임인 것 같았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비어 있는 자리는 점점 다 차게 되었다. 아까 나를 마중 나온 안경을 쓴 여성분이 긴 테이블 한쪽 끝에 서서 마이크를 손으로 쥐고 출석 인원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문화 기자단의 단장입니다. 여러분이 다문화 기자단에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바로 다문화 기자입니다. 올해 한 해 동안 여러분과 함께 멋진 다문화 신문을 만들 겁니다. ”
날씬한 몸매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이 단장님은 실제로는 30대 후반 나이지만,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나의 꿈에서 봤던 엄격한 남성 편집장님과 완전히 다른 분이 서있었다. 꿈과 다른 친절하고 아름다운 단장님을 보자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하는 걱정이 여전히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단장님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쓴 기사는 자기 나라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국인에게 소개할 만한 문화와 생활방식, 음식과 관광명소 등등입니다. 한국어로 글을 못 쓴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 겁니다. 오늘 여러분은 자기소개와 쓸 주제만 정하시면 되세요. 그리고 오늘 맛있는 간식도 준비되오니, 맛있는 것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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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번 같이 밥을 먹는 사이가 됐네요.” 외국인 중에서 한국에 오래 살던 분이 유머 있게 한 마디를 던졌다.
모두가 하하 웃으니까, 긴장했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이어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물론 얼굴을 보면 한국 사람 생김새가 아니지만, 대부분은 어려움 없이 한국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오늘 여기에 나온 외국 여성들 모두 한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단장님은 맛있는 것을 드시면서 기자 주제를 발표하자고 말했다.
재미는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면서 서로 간의 거리가 점점 사라졌다. 다들 바쁘게 먹는 중에 나도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귀에서 익숙한 말이 들렸다.
“천웨 기자님, 이번 신문 기사는 무엇을 쓰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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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혹시 이것도 꿈인가? 내 심장은 꽝꽝 빨리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