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는 20대 응애인걸요.
나의 인생은 한 순간도 평탄하지 않았다.
유년기와 그리고 청소년 시기 때 부모님이 마트를 운영하셨는데
같이 근무하시다보니 매일 싸우기 바쁘셨다.
일 특성상 초등학교 전학 4번
중학교 전학도 2번 다녔는데 뭐.
애들한테 왕따당해서 맞기도 해보고 별일이 다 있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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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22살의 나는 첫..연애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젠장
처음부터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을 당해버렸다.
그 썩을 놈은 순진한 나에게
"너같은 년을 낳은 니 애미 애비가 불쌍하다"
"느그 애미는 피임도 안해서 너를 낳았냐?"
등
등
등
싸울 때마다 온갖 폭언과 폭력을 선사했다.
겨우겨우 친구의 도움으로 그 놈과의 연을 끝내고
나의 두번째 연애는 상처로 인해 의심이 끊임없었다.
아마 그런 악순환의 연애를 거치다가...
아빠는 명문대를 다니는 동생에 비해
지방사립대를 졸업한 멍청한 내가 너무 싫으셨나보다.
나를 6년동안이나 싫어하고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말도 걸지 않았다.
하물며 그때당시 재택근무로 영어를 가르치던 나는 아빠 눈치보느라 소변도 참고
결국 방광염도 찾아왔다지.
그래서 나는 아빠를 떠나 자취를 시작했다.
아~~~~~~~~~~~~ 젠장
집떠난지 3개월만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프니 집에 들어오라고.
욕이 나왔다.
어 그런데 엄마의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네..
왜냐하면 조현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정말 매일 밤/새벽마다 내 방에 찾아와 욕설은 기본이고
갑자기 밖에 나가 소리를 친다던가
뉴스에서만 보던 상황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사실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 극복했는데
그 후에 조현병으로 더 세게 왔다.
결국 엄마는 수개월 동안의 입원 치료 끝에
현재는 약만 먹으며 생활 중이다.
대체 어디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삶.
K-장녀인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독서와 일기를 써나가며 꾹꾹...
눌러담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점점 병에 걸려
소주에 의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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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고생했어"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