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 일도 많다

동가식 서가숙

by 주말



문화 충격. 이라는 말을 남용하면 그 '충격'의 정도가 매번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타국에 있다보면 분명 문화적으로 충격을 받는 순간이 있다. 태국에서 트랜스젠더와 대화를 나눈다거나, 호주에서 파이프로 대마초를 뻐끔뻐끔 피고 있는 시민을 길에서 만난다거나 할 때. 그럴 때면 문화적 충격의 여파가 절절하게 느껴지곤 한다. 쿵하고 떨어지는 낙차가 야기하는 물리적 충격이 있는가 하면, 온도차가 일으키는 일종의 아찔함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일본에서 느꼈던 충격의 경우는 명백히 그 후자에 가까웠다.


일본에는 '리미티드 익스프레스'라는 기차편이 있다. 나는 '아마도 속도를 제한하는 고속 열차구나'라고 생각했다. 오이타행 열차에 앉아서 벤또를 사서, 냄새를 폴폴 풍기는 도시락을 객차 내에서 먹는 것을 당연스레 여긴다는 것도 적잖이 놀라운 일이지만, 자리를 잡고 우적우적 퍼먹고 있었다. 어느 역에 정차하는데 갑자기 모든 승객들이 우르르 일어나 일사불란 좌석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빙그르르 좌석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잡아당겨서 역으로 등받이를 바꾸는 방식이다. 신기하죠. 처음에는 일행이 타기전에 마주보는 자리를 만드는 줄 알았지만, 눈치를 보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당연히 모든 승객에게 동행이 있을리는 없다. 그래서 나도 머쓱하게 벤또를 집어들고 도움을 받아 좌석을 돌렸다. 우당탕탕 하다보니 커피를 흘려서 축축한 좌석에서 내내 불편하게 갔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약속한듯 일심하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딴짓하다 설명을 놓친 문제 학생이 돼버린 기분이 든다. 더군다나 엉덩이도 축축해서 왠지 오뎅탕에 잘못 끼어 들어온 식재료가 된 기분이다.


세간에 알려지기로 일본에서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문화가 뿌리 깊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여행자에게도 그러한 문화는 피부에 와닿게 느껴진다. 좋게 말해 배려하는 문화, 안좋게 말하면 눈치를 보는 문화다. 그런데 막상 호객문화를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해가 뒤편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면 특정한 시간에만 활동하는 동물처럼 길거리에는 꾸물꾸물 호객꾼들이 들어선다. 이자카야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듯 비슷비슷한 앞치마를 두르고 행인들에게 '이랏샤이마셰' 라든가 '도모'라든가 말을 술술 걸어온다. 우리나라는 전단지가 고작인데, 참으로 적극적이다. 더군다나 도쿄에서는 어디를 가든 이용료 팻말을 들고 있는 어린 여자애들이 보인다. 가출 청소년인지 뭔지 몰라도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꽤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신주쿠에는 불량한 표정의 껄렁껄렁한 여자애들이, 아키하바라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여자애들이 마치 길거리 음식을 팔듯 가격표를 들고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팔고 있는 걸까. 다른걸 다 떠나서 길의 양쪽에서 팻말을 들고 애틋하게 서있는 호객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우리가 식당 테이블에서 신나게 담배를 피는 모습을 더이상 상상 할 수 없는 것처럼. 더군다나 일본은 담배 피면서 초밥도 만다. 정말로.

포르노 산업도 그렇다. 포르노가 합법인 나라라니. 건전한 한국 시민인 나의 상상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꽤나 예전부터 순수한 탐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포르노를 소비하고 있을까. 물론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지도 조금은 궁금하긴 하지만. 하핫 농담. 어찌됐건 이번 일본 여행은 그것을 확인할 절호의 기회. 하지만 좀처럼 확인할 만한 기회는 딱히 없었다. 그러다가 아키하바라 근처를 구경하던 중에 포르노를 판매하는 타워를 우연히 찾게 됐다. 성인이 된지도 10년이 넘었건만 어쩐지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심정으로 조심조심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본의 포르노 산업은 말그대로 문화 대충격. 인파가 몰리는 메인 스트리트에 포르노 타워가 버젓이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하나의 빌딩 안에 그야말로 각양각색 세상천지 모든 포르노가 모여 있었다. 가격은 편당 3천엔 정도. 타워 안에서는 정식 버전의 야동이 여기저기서 끊임 없이 재생되고 있다. 프리뷰라든가 적당한 수위로 편집된 것이 아니라 판매하는 비디오가 그대로 나온다. 그리하여 빌딩 전체는 이상야릇한 소리들로 가득차게 된다. 사방의 벽면과 커다란 수납장들에는 항목별 인기별 이름순으로 정렬된 갖가지 포르노들이 준비되어 있다. 거기에는 세상 모든 취향과 판타지를 충족시키고 말겠다는 그야말로 일본인의 '변태적인 결심'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카운터에 가서 '어떤 신장 2m의 여자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인에 납치를 당해서 훌쩍훌쩍 울고 있을 때,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합심하여 여성을 구출한 뒤, 러브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려는데 알고보니 그 여자는 트랜스젠더였고 아이언맨은 성불구자 였다.'라는 스토리의 야동을 요구하더라도 ‘아 그거라면 K열 293번으로 가세요.' 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줬을지도 모른다. 실로 일본에는 그정도로 별처럼 수없이 많은 야동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또다른 형태의, 상당히 많이 왜곡되고 변형된, 장인 정신인지도 모른다. 밤하늘 별처럼 많은 여성의 가슴 사진에 나는 그만 헤롱헤롱해져서 밀려나듯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거리로 나왔더니 이번에는 팻말을 들고 말을 거는 여성들. 이제는 더이상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본 정말 남 눈치보는 사람들이 맞는 걸까. 어쩌면 일본인들은 아침의 인격과 밤의 인격을 따로 가정에 필수적으로 구비해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거나 오래 지내고 돌아온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무척 친절하지만 속은 영 딴판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뭐 얼마나 심하랴 싶지만 상대에게 드러내는 겉마음을 '다테마에', 속마음은 '혼네'라고 칭하는 용어까지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한 표리부동은 일본인의 고유한 시민적 특성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고작 2주 정도 여행으로 다녀온 주제라서, 나에게는 일본인들의 겉과 속에 대하여 아무런 의견도 발언권도 없다. 그저 내가 겪은 문화적인 차이와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작은 충격들을 통해서 종합적인 하나의 인상을 파악해볼 뿐이다. 마치 지진계가 진앙의 파동을 읽어내는 것처럼.


아마도 단적으로 보면 일본인은 확실히 한국인보다 친절하다. 질서도 규칙도 정직하게 잘 지키고 시민 의식도 높다. 그렇지만 동시에 조금 뒤틀리고 깊은 고립성을 거대한 문화 그 자체로 품고 있다. 아마도 타국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문화적인 이질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에게는 좋건 싫건 그런 모순이 없다. 표리의 일체. 혹시 일본이 덮밥 문화 라면 우리나라는 비빔밥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덮밥과 비빔밥을 고르는 것이 단지 취향 문제인 것처럼 그것 또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취향 문제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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