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의 정신병
이런 검사인 줄 알았다면, 오늘 시간 여유가 있냐는 질문에 배고프지 않았지만 후딱 밥 먹고 온다 할걸... 정신과에 방문한 첫날 의사 선생님과의 질의응답 후에,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 볼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가벼운 대답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질문지들을 읽고 선택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에이포사이즈가 몇 장인지 세어보다 숫자가 헷갈릴 정도의 많은 종이 뭉텅이를 보고 병원방문 자체를 잠깐 후회했다. 의사 선생님이 나의 기본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 질문지부터 문장완성검사, 불안 정도와 우울증 척도검사, 그리고 정확하게 떠오르기도 힘든 제목의 질문지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현실자각타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오랜 고심 끝에 직접 병원 예약을 했고, 어찌 됐건 시간 맞춰 여기까지 왔고, 안내와 설명을 들었고, 이 만큼의 질문지를 받았고, 볼펜은 쥐고 앉아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이왕 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시작한 거 끝까지 집중해서 정확한 결과를 얻어내자는 생각으로 변환됐다. 내 사십 년 넘는 삶에 대한 평가라도 받듯이 나의 모든 감각에 날을 세우고 응했다. 무려 한 시간 반. 가히 노동에 가까웠다. 검사를 다 마치고 후련함은 잠시,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이 짧은 시간만에 얼마나 욱여넣을 수 있겠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짧았다.
다시 찾은 병원에선 족집게 일타강사 같이 자신감을 장착한 의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신에 찬 눈빛을 장착하고 검사 결과 속 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치 속사포 래퍼처럼 빠르지만 리듬감이라곤 전혀 없었고 사무적인 말투로 검사 결과를 읊었다. 마치 책의 한 페이지를 터치하면, 입술 부분만 움직이며 자동으로 소리가 나오는 기계 같았다. 모두 다 정확하게 알아듣고 기억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들렸다.
“풀비씨 검사결과 우울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그 결과 불안으로 인한 공황, 그리고 발작까지 일어난 겁니다.”
“…아…네…”
“그리고 대인관계공포증이 있어요”
나의 근본적인 주요 문제는 예상대로 우울과 불안이 맞았지만, 대인관계공포? 처음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병명이 정말 존재하나 싶어 나의 사고가 멈칫했다. 나를 웃기려고 방금 만들어 낸 단어 같았다. 그에 비해 의사 선생님의 얼굴엔 진지함과 걱정이 한가득이다. 어이없는 병명이 우스워 입매가 움찔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그리고 미소 지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두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대인 공포증‘ 아니고, ‘대인관계 공포증‘이라고 다시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의사 선생님에게 나는 입꼬리를 다듬고 진지하게 질문했다.
“제가 내적 성향이라 사람들 만나는 게 힘든 거… 그런 거 아닌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다릅니다.”
선생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내 귀를 통해 들어오고 있음은 알았지만 뇌로 향하기는커녕 근처에 오지도 못하고 줄줄이 흘러 빠져 나갔다. ‘대인관계공포증‘을 되뇌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낯설고 괴상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간 제법 신경 쓰이는 공황 증상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흔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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