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 정신병_있는_자 = 공황??

운전 중 공황 - 정신과 약 = 발톱?!

by grassrain




바로 옆 단지로 하는 이사 날짜를 못 맞춰 한 달 넘게 친정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두 아이들은 일주일, 보름정도 등하교를 해야 겨울방학을 맞이하는 시기였다. 영하 십 도를 기점으로 넘나드는 한반도의 겨울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친정집에서 아이들 학교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은 족히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해가 떠 있는 시간도 아직은 짧아 내가 등하굣길을 동행한다 해도 고행길이 더 나아질 건 없었다. 덧붙여 학교가 방학을 한다 해도 아이 둘의 적은 스케줄이라도 계속 이어져야 했다. 이사를 보름정도 앞둔 어느 날, 평소 온순하고 말 수 없는 중학생 첫째 딸아이가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엄마! 엄마가 운전해서 나 등하교하면 안 돼?”

그렇게, 드디어, 생각보다 빨리, 나에게 운전을 해야 하는 때가 왔다.

정신과에 방문하고 공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초반, 의사 선생님은 공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피하고 일부러 하지 않는 게 있느냐 물으셨다. 난 단번에 ‘운전하기‘ 라 대답했다. 난 사실 첫째 아이 출산 전까지 자칭타칭 ‘베스트 드라이버‘ 였다.


이십여 년 전 대학 졸업 후, 운전하면 삶이 더 윤택해질 거란 부모님의 말씀에 장롱면허증을 꺼내 들고 서울 도로를 누볐다. 운전 보조석에 앉아 경험한 간접운전을 경력 삼아 무식하고 용감하게 시작했다. 핸드폰 속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겁도 없이 혼자서 초행길을 나서는 날들도 제법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시작하는 수업에 늦잠을 자버린 여동생에게 여유롭고 쾌적하게 아침 등교를 책임져 주기도 하고, 호기롭게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에서 용인까지 가 보기도 했다. 결혼 후엔 장롱면허였던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직접 해주는 등, 약 삼 년간 무사고를 기록하며 기동력 좋은 시절이 있었다. 운전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진정한 어른에 다다른 듯했다. 운전하는 행위 자체에 재미를 느꼈고, 살아가는데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듯했다.


그러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불러오며 운전대를 잠시 놓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의 두 돌이 되기 전, 보따리장수 같은 짐과 두 아이들을 차에 싣고, 내 몸 편하게 다니고자 운전대를 다시 잡아보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없는 주중에도 아이 둘과 함께 활동 반경도, 시야도 넓히며 내 삶의 편안함을 욕심부려 보기로 했다. 경력신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용기를 냈다. 뒷 좌석엔 어리고 약한 두 생명체가 어색한 위치에 앉은 나를 똘망똘망 지켜보고 있었고, 내가 넉넉하게 앉아있던 보조석에 왜인지 좁아 보이는 게, 한껏 꾸겨 앉아있는 남편이 함께 했다.

약 오 년 만에 다시 앉은 운전석은 그 사이에 낯섦을 넘어 두려움의 자리가 되었다. 운전석을 앉기 이전의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고, 운전 경험은 싹 다 잊혀졌고 이제 갓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해 보는 왕 왕초보자로 느껴졌다. 운전석의 환경 또한 이전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일단 열쇠로 시동을 걸던 차에서 버튼을 누르며 시동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뒷 좌석엔 치밀하고 섬세한 보호가 필요한 생명체를 태우고 있다는 책임감이 얹어져 있었다.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운전석에 앉아 내 눈높이에 맞춰 의자를 조절하고, 룸미러와 사이드 미러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시야를 최대한으로 넓히고 주변을 훑어보며 낯섦을 떨쳐내보려 했다. 남편과 익숙하고 제법 많이 오갔던 도로를 연습해 보기로 했다. ‘할 수 있다’를 되새기며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하고 오 분이 채 되지 않아 긍정의 자기 암시는 통하지 않았고, ‘겁난다’ ‘무섭다’는 두 감정에만 집중됐다. 그리고 ‘혼란’이라는 놈에게 먹혀버렸다. 전방을 주시하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있었지만 시야가 평소 같지 않다는 불안감에 사로 잡혔다. 승모근부터 목의 뒷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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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이는게 아주 많~이 부끄럽지만 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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