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1
주말에 메뉴를 결정하는 일은 괴롭다. 뭘 먹을지 고민하기도 싫을 땐 냉동실의 건조된 꽃새우를 꺼낸다. 꽃새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은 가족들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이다. 다 끓여낸 된장국을 퍼낸다. 아이가 한 입에 쏙 먹기에 적당해 보이는 팽이버섯을 찾는다. 된장국 하나 퍼올리는 데에도 내 나름대로의 순서와 철칙이 있다. 까다로운 식성의 소유자인 둘째를 위한 섬세한 국자질이 그 시작이다. 버섯류를 싫어하는 둘째 아이가 국수 면 같아 그나마 먹어주는 버섯이다. 두 번째 그릇은 엄마가 끓여준 국 중에서도 된장국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첫째 아이에게는 야채들을 골고루 담아준다. 좀 특이한 점이라면 국물보다는 건더기들 위주로 듬뿍이다. 무를 특히나 좋아하는 남편은 냄비 바닥에 깔린 무를 긁어모아 낸다. 그러고서 남은 건더기들은 마지막 내 국그릇 행이다.
따뜻한 국과 밥을 네 그릇씩을 다 퍼내고 나서 식탁의 빈자리에 앉는다. 이제 제법 큰 두 아이들은 진즉부터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두었고 냉장고 속 밑반찬들은 소분해서 번듯하게 잘 차려놓았다.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빨간 반찬과 김치가 거의 항상 우리 집 밥상 위를 더 맛깔나게 채워주고 있다.
냉장고에서 나온 밑반찬 외에도 따뜻한 반찬 한 가지를 꼭 곁들인다. 들기름을 듬뿍 두르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약한 불에 지금 막 구워낸 두부 부침, 치즈를 넣은 계란말이, 고기와 야채를 넣고 볶기도 하고, 김치찜이나 국물이 짤박 한 찜닭이나 두부조림을 할 때도 있다. 고등어나 삼치 같은 생선을 구워 줄 때도 있다. 돼지고기나 오리고기는 항상 어우러지는 야채들도 꼭 함께 구워낸다. 우리 가족은 육고기는 연달아 많이 먹지 못한다. 두부나 계란을 곁들인 반찬이 있으면 육고기를 안 먹는 주말도 종종 있다. 흔하디 흔한 반찬일지라도 따뜻할 때 딱 한번 먹는 걸 좋아한다. 남편을 비롯해 두 아이들은 밥이 있는 한식이면 뭘 해주던지 다 잘 먹는다. 남편의 식성 덕분이라 해야 할지, 때문이라 해야 할지.
나의 친정집은 집안 사정이 나아진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서 밥을 먹기보다는 피자나 햄버거, 치킨 같은 바깥음식을 더 좋아했다. 가족 모두 외식을 참 좋아했고, 집에서 국과 밥, 밑반찬들이 갖춰진 한식을 차려 먹는 일은 손님 오실 때나 먹는 일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 온 내가 채식주의 식단에 가까운 한식 밥상을 거의 매일매일 차려내고 있다. 어쩌다가 난 결혼과 동시에 이렇게 상반된 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집밥을 놓지 못하는 걸까. 왜 내가 만든 틀을 깨부수고 나오지 못하는 걸까.
사실 난 결혼 전에 난 밥 물은커녕, 라면의 물 양도 못 맞추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십칠 년 동안 할 줄 아는 요리가 참 많아졌다. 제일 큰 이유로 평일 저녁에 배달음식은 절대 없다. 아이들이 평일 점심엔 학교에서 먹고 오기에, 저녁만은 집에서 건강하게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꼭 챙겨주고 싶었다. 내가 차려주는 집밥을 든든히 먹고 아이들이 나의 바람대로 단단히 커가는 게 보였다. 자라고 있는 성장기이기에 집밥을 차려주려는 내 욕심도 한몫했다.
집밥의 맛을 알지도 못했던 어릴 시절부터 막연하게 밥을 잘 먹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 친구들은 나와는 달라 보였다. 나에게는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있어 보였다. 공부도 잘하고, 예체능은 물론, 친구들에게 인기도 좋더라는 확신은 아주 깊숙이 내 안에 박혀 함께 자랐다. 정작 한식을 안 좋아하는 나는 별나게 밥을 잘 먹는 한 남자(현 남편)에게 눈길이 갔더랬다. 된장국의 두부를 참 좋아하는 20대 초반. 쪄낸 호박잎을 쌈장과 함께 밥을 싸 먹는 남자. 계란국의 파를 세심하게 건져먹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나에겐 가장 큰 매력이었다 말하면 안 믿기겠지? 역시나 밥을 잘 먹어서인지 속이 가득 차고 단단해 보이는 이 남자와 결혼하며 우리가 낳는 아이들만큼은 이 남자의 식성을 닮은 사람으로 키워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알았다. 너무 늦게 알아챈 거지. 집밥 없이 살 수 없는 남편, 그리고 그의 식성을 닮은 자식들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고, 짧은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그 희망을 이뤄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말이다. 집밥을 좋아하는 가족과 산다는 건, 누구 하나 부엌 안에 상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역시 그 사람은 엄마인 ‘나‘이다.
나의 딸아이 둘은 사춘기가 되어도 그토록 유행인 마라탕을 찾지 않는다. 맛을 봤지만 차라리 안성탕면이 훨씬 낫다 말한다. 그 라면도 한 달에 두어 번. 햄버거 따위는 명절동안 치사량에 가까운 집밥에 질려 일 년에 몇 번 먹는 별식이 되었다. 더 우스운 건 햄버거보다는 끼어 나오는 장난감과 사이드 메뉴에 더 관심이 많다. 배달 피자나 치킨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맛보는 음식이다. 하물며 학교 급식으로 동그랑땡과 뿌링클의 존재를 알아왔다. 우리 집의 아이들은 정말 내 꿈대로 집밥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라났다. 그렇다. 성공이었다. 엄마가 해주는 동그랑땡 대신 야채전, 뿌링클 대신 야채와 고기를 볶아 낸 반찬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내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절대 쉽지 않았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수많은 시간들은 물론, 나의 피, 땀, 눈물이 듬뿍 담겼다고 주장한다. 이유식 시기부터 아이들의 식사에 대한 나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제일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강된장에 밥 비벼 정신없이 먹는 중3과 초등6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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