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 글채집 소재 - 인사

인사말 2

by grassrain

주말 낮 12시가 다가오면 도통 나에게 할 말이라곤 없는 남편이 나에게 먼저 꼭 꺼낸다.

“밥 먹을 시간 다 되어간다.”

오늘 메뉴는 무엇이냐 묻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난 묵직한 엉덩이를 끈적한 바닥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한 걸음… 두 걸음… 발 한 짝도 무겁다. 밀어 넣은 사람은 없지만 난 부엌으로 떠밀려 들어와 있다. 밥 해달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하아…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밥 하기 정말 싫다.”

쌀 씻는 물에 닿는 손끝부터 소름이 돋는다. 밥상을 차리기 위해 보던 TV, 읽던 책, 호기심 갖고 들여다보던 핸드폰을 그 자리에 내버려 두고 부엌에 홀로 서있다. 그 외진 구석에 서서 뜨거움과 날카로움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미치도록 싫다.

처음엔 그저 뭘 해 먹을지 고민스러워서, 요리가 싫어서 밥 하기 싫어하는 줄 알았다. 월화수목금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사람에게 주말만큼은 마음껏 쉴 수 있게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연휴가 되었든 주말이 되었든 식구들 밥 챙겨주는 일은 엄마이자, 전업 주부인 나만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 주중 오전 시간에 나 혼자 뒹굴거리면 되지. 애들 학교 갔을 때 실컷 하면 되지. 누군가는 주말에도 끼니 신경을 써야지.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주말의 모든 끼니를 배달이나 외식으로 채울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하는 게 맞겠지. 남편이 부엌에 들어서서,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보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게 더 싫다. 그렇다면…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없다.

하지만 밥을 다 먹고서도 끝은 아니다. 뒷정리는 물론 설거지 또한 당연히 내 담당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벌이를 담당하고 있는 남편은 성에 안 차는 집안 모습이 항상 불만족스럽다. 그래서일까. 집안일을 앞장서서 진두지휘 한다. 하지만 집안일들 중에서도 특히 부엌일은 전업 주부인 나의 일이라 생각한다. 기껏 밥상을 번듯하게 차려 놨고 맛있게 싹 다 먹었지만, 가져다 줄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밥 다 먹은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 식탁 위는 변화 없다. 바닥에 붙어있던 나는 뭉그적 일어나 밥상의 잔해들을 큰 쟁반에 옮겨 담는다. 쟁반의 무게가 오를수록 내 안의 분노도 차오른다. 혹여나 내 양 팔이 제멋대로 쟁반을 내팽겨 쳐버릴까 싶어 후다닥 내뺀다. 내 뒤꽁무니를 쫓아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온다.

“상을 닦으려면 제대로 닦아야지!!”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싱크대 안에 차가운 수돗물을 틀고 빈 그릇을 차곡차곡 내려둔다. 내 안의 열기도 수돗물과 함께 흘려보낸다. 가만히 가라 앉힌다. 그러면서 바로 몇 시간 후에 또 치러야 할 저녁을 또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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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게 많~이 부끄럽지만 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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