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것’ 은 없다.

글채집 4월 - 작별

by grassrain


지난 일 년간 우리 집 의료비가 120만 원 정도이다. 그중 80만 원 정도가 나에게 쓰이고 있다. 이 만만치 않은 소비는 벌써 삼 년간 우리 집의 고정 비용으로 차지하고 있다. 세세히 따지고 들어가 보면 80만 원 중 30만 원 정도는 녹내장과 관련된 안과 진료비와 6개월치 안약 비용이고, 나머지 50만 원은 정신 건강의학과 비용이다.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정신 건강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마땅한 벌이도 없는 내가 숨쉬기 위한 비용 말고도 추가로 드는 비용이 많은 듯하다. 우리 집의 구매와 지출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절약하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내 겉모습을 보았을 때 녹내장임을 전혀 알 수 없듯이, 우울증도 드러나지 않은 채 꽤 오랫동안 갖고 살아왔다. 오래 묵혀 온 병이라서일까, 아무래도 보통 수준은 아닌 듯하다. 병원에 다니기 전에는 나름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왔다.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힘든 게 아니라 그저 게으르고 느린 것뿐이며, 누구든 한 번쯤은 살기 힘들다 생각할 거라 믿어 병원 다닐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심지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전문의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도 약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흔한 감기약 먹는 것 마저 꺼려하는 나로서 반신반의하며 먹기 시작했지만 약을 먹고 대략 한 달이 지나고서는 약의 긍정적인 효과를 몸소 깨달았고, 보통의 일상생활을 위해 나에겐 약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걸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병원에도 가지 않고, 약을 먹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튀어오른다. 하지만 약을 챙겨 먹지 못한 날엔 정신 사나운 신체 현상으로 금세 알아챈다. 그리고 약을 내 임의로 끊어 낼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가벼운 현상으로 다리를 떤다. 그저 다리 한쪽을 습관적으로 떠는 행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미친 듯이 두 다리를 동시에 흔들어 재낀다. 마치 두 다리를 프로펠러로 이용해 공중에 뜨기 위한 시동을 걸듯이 말이다. 평소 다리 떠는 습관이 없었기에 약의 부작용임을 알아챘다. 그럴 때 바로 약을 섭취하면 잠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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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이는게 아주 많~이 부끄럽지만 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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