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을 마주할 용기

심해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궁이다.

by 처녀치마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더 이상 그렇게 긴 방학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몹쓸 병이라고 한다. 나는 그 '몹쓸 병'이라는 어감이 좋았다. 어디에도 갖다 쓸 수 없는 것. 생각해보면 병이란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키기 마련인데, 관절염에 걸린 엄마는 더 이상 주말마다 산에 오르지 않았고 당뇨에 걸린 아빠는 술과 담배를 줄이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병이란 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피로한 낯빛의 의사선생님이 대학병원과 정밀검사 따위를 언급기 전까지, 아마도 그랬다.


깨달음은 뒤늦게 찾아왔다. 러니까 그 병이란 놈이 조금이나마 쓸모를 갖는 건, 주를 죽이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단 사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치 앞 미래도 모른 채 살아가지만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봤기에 잘 알려져 있는,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길을 가고 있단 사실이었다. 그건 마치 내 인생에서 T MAP을 켜고 가는 것과 같았다.


띠링. 300미터 전방에 항암주사 구간이 있습니다. 부작용은 구토, 근육통, 탈모 등등 입니다.


안내음이 울리면 나는 지름길을 탐색하고 싶은 충동을 누른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30키로 미만의 속도로 거북이처럼 몇 개의 방지턱을 넘고, 구역질을 하며 아직은 딱지가 끊기진 않겠구나 안도하는 것이다.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그렇게 긴 방학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고는 그들에겐 어른의 시간이 보장되어 있지만 내겐 없단 점 뿐이랄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필연적으로, 거의 모든 항암환자가 그랬듯이 내게도 우울증이 왔다. 며칠에 한 번씩 나는 꿈 속에서 거대한 주사기가 되어 엄마와 아빠를 찔러댔다. 눈을 뜨면 노령견 토리가 끙끙거리며 내 얼굴을 핥았고 밤새 그 작고 연약한 것을 끌어안고 소리죽여 우는 시간이 계속됐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제주도에 가야 한다는 괴이한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


처음 내게 그 몹쓸 병이 도사리고 있단 걸 알았을 때 가족들은 아예 내가 일을 그만두길 바랐지만 나는 마간의 병가 후 복직했다. 동시에 제주도에 있는 근무지에 지원했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며칠 간 울고 불며 내 얼굴을 보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항암을 포기하고 삶을 정리하러 간다 생각한 것이다. 내 편이 되어준 건 나를 위해 직장까지 바꾸셨던 아빠였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눈빛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TV만 보던 아빠는 드시던 당근 반쪽을 내게 건네며,


올해 할아버지 제사엔 제주도 고사리를 올려보겠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갔다.




경기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오는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열흘. 우여곡절 끝에 이삿짐을 부치고, 정들었던 사람들과 이별하며 3년 동안 매일 보던 직장의 정문을 나오니, 내 시간의 어느 부분이 정말로 그렇게 매듭지어진 것 같았다.


미션 완료를 축하드립니다. 다음 스테이지는 미지의 몬스터가 출몰하는 제주 아일랜드입니다.


2년 전에도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왔지만 올해의 제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남달랐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인지, 죽을 때가 되니 진짜본색이 드러난 것인지 점점 중2병스러워지는 내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두모악을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또 목놓아 울었다.


별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제주도에 인사를 하고 싶었고, 그 중에서 제주도를 가장 잘 그려낸 사진작가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김영갑의 사진을 처음 알려준 건 절친한 후배 K였다.


언니. 일정은 마음대로 짜요. 난 두모악만 가면 돼요. 거기 사진은 이상하게 쓸쓸해.


여자 둘이 제주도에 놀러와서 왜 굳이 쓸쓸함을 찾아야 하는지 묻지 않아도 나는 이유를 알았다. 우리의 만남엔 기어코 그런 것들이 하나쯤 있어야 했다. 아름다운 것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여운을 지니기 마련이라, 두모악의 김영갑 사진이 꼭 그랬다.


바람에 젖은 오름. 그게 나를 숨 쉬게 할 제주였.


시간이 지나고 다시 K를 만난 것은 슬슬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K는 공항에 마중나가지 못해 미안해하는 나를 향해 고갤 절레절레 젓고는 액자를 하나 건넸다. 스산하게까지 느껴지는 안개 자욱한 오름 사진이었다.


내가 찍은 첫 작품은 언니한테 주고 싶었어요. 희망적이고 몽글몽글한 건 이제 질릴 때가 됐겠다 싶어서.


안 그래도 며칠 전 엄마가 해바라기 액자로 집 안을 도배해 놓았던지라, 우리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 그날 저녁 엄마는 K의 선물 고르는 안목을 불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이 좋았다. 더 정확하게는, 이 섬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