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그곳에 있어야겠다.
죽어가는, 사라져가는 것을 대하는 자세
한 번쯤으로 소비되는 도시.
내 땅, 내 바다, 내 삶 속에
부대끼며 공존하는 것이 아닌,
잠시 머무는 객처럼 왔다가 언제든지
훌쩍 떠나버리는 섬.
너도 나만큼이나 외롭겠다 싶어서.
이 주임은 연고도 없는데 왜 제주도로 왔어요?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내 제주행을 '죽음을 앞둔 자의 흔한 변덕'쯤으로 치부하곤 했지만 가끔씩 왜 굳이 제주여야만 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커다란 공기방울을 삼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내 옆자리의 50대 계장님이 이상한 젤리를 씹으며 물어왔을 때도 그랬다.
고작 일곱 명이 전부인 좁은 사무실. 새로 온 전입직원에게 별 뜻 없이 인사차 건넨 물음임을 알면서도 평소처럼 '그냥 바다가 좋아서요.' 대답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날따라 창문 너머로 어른거리는 바다에 홀리기라도 했던 건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선배가 제주도 사람이었는데,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관심을 끌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스무살. 고작 2년의 짝사랑이었다.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선배는 마치 펄떡이는 고등어의 비늘 같은 사람이었다. 찬란하고 거침이 없어 교내 화장실 앞에서도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
대개의 첫사랑이 그렇듯 반짝이는 것에 면역이 없었던 스무살의 나는 그의 표정을 따라하고, 그가 읽는 책을 읽고, 그가 읊는 신념을 숭배하며 허덕였다. 선배가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의 고통과 희망, 변화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들 속에 스며드는 건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나는 어렸고, 이별과 사라져가는 것의 의미를 몰랐다. 매일 같이 사방에서 별이 펑펑 터지는 것 같았던 20대의 절반이 지나, 고시원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쯤 들었던 선배의 자살 소식에도 그저 막연히 세상을 탓했다. 그가 짊어진 것만큼 내 삶도 버겁다 여기며.
제주에 대한 기묘한 강박은 병을 진단받은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완치율 십 프로, 그 기적 같은 확률에 기대 같은 병을 공유한 사람들의 수기를 뒤적이며 바늘이라도 건져올리려던 시기였다.
어느 대학병원 선생님이 어떤 논문을 썼다더라에서부터 산골짜기 어느 물을 먹으면 체질이 바뀐다더라 같은 글에 이르기까지, 정보의 바다에 허우적거리고 있던 내 눈에 띈 것이 제주도 한 달 살기 광고였다.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어하는 자연의 도시,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세요!
그건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해 안배된 순간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어하는 도시.' 그 문구를 보자마자 오래도록 묻혀 있던 기억 하나가 불현듯 생생해지는 것이다.
선배는 왜 고향을 떠나 서울까지 오게 됐어요?
글쎄. 누구도 떠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단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육지인들에게 제주는 늘 한 번쯤으로 소비되는 도시니까. 내 땅, 내 바다, 내 삶 속에 부대끼며 공존하는 것이 아닌, 잠시 머무는 객처럼 왔다가 언제든지 훌쩍 떠나버리는 섬. 그게 어떨 때는 남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참 슬퍼.
나는 노트북을 집어던졌고 놀란 엄마가 달려왔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던 둑이 마침내 무너져내린 순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혀 괴물처럼 울어대는 나를 끌어안고 엄마는 주문처럼 읊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사라지는 게 싫었고 남겨지는 건 더더욱 싫었다.
육지와 한참이나 떨어진 이 작고 외딴 시골 기관에도 결국 소식이 돌았나 보다. 며칠 후 계장님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선 젤리 한 박스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평소의 괄괄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 몸에 좋대.' 툭 던지는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애초에 잦은 병가를 내야 했기에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좁은 사무실 안에 감도는 미묘한 기운마저 반가울 일은 아니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괜찮다'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산다는 건 몹시 피로한 일이다.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그렁그렁하는 식당 아주머니와, 깔깔 웃고 떠드는 직원들과의 수다 속에서도 습격처럼 찾아오는 공백은 어디에나 있었다.
도시에서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내가 가진 병은 내 소중한 사람들마저 병들게 할 정도로 사악하고 악독하였으므로, 나는 결코 이것과 공생할 수 없다 여겼다.
집에 돌아온 나는 사무실 사람들이 내 눈치를 너무 봐서 불편하다고 하소연하며 엄마가 까준 귤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가 사나운 눈초리에 뱉어냈다.
엄마. 세심하게 깐 귤 조각 하나를 입에 넣자 달콤하고 새큼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새끼 손가락만 한 것을 한참을 오물거리다 말했다.
언제쯤 나도 쿨해질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주제였는데 눈썹을 찌푸린 엄마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명료했다.
니 아빠를 봐라. 쿨하다 못해 고드름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 딸인데 못 그럴 이유가 어디 있어.
아마도 내가 쿨해진다면 그건 아빠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응. 진짜 그러네.
그래서 나는
쿨하게 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