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타심과 자기애 그 언저리
네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
난 괜찮아.
나 대신 네가 그렇게 우는데
어떻게 안 괜찮을 수 있겠어.
오래 전 어느 칼럼에서 본 글인데, 제주도에는 특별히 '맛집'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무시무시한 물가와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비평에서 살아남은 곳들의 각축장인 탓에 대부분의 식당이 상향평준화되었다는 얘기였다. 우리동네 CU편의점 옆에 있는 국수집도 그랬다. 가까웠지만 낡고, 늘 손님이 적어 내부만 구경하듯 스쳐지나갔던 가게의 이름도 몰라 우리 가족은 항상 'CU 국수집'이라고 불렀다.
그날은 유난히 상태가 별로였던 날이었다. 먹는 것마다 게워내면서도 허기에 잡아먹히기라도 할 것 같은 공포감에 목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음식물을 집어넣다 결국 응급실에 실려갔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 말로는 의식이 혼미한 와중에 내가 '국수 먹을래'라고 했단다. 이런 걸 두고 먹다 죽은 귀신이 붙었다고 한다나.
엄마는 굿을 하는 대신 며칠 사이에 4키로가 빠진 나를 'CU 국수집'으로 데려갔다. 두어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곳이었다. 가져온 살균 물티슈로 유난스러울 정도로 테이블과 수저를 닦는 엄마를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보았다.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세균 한 마리로도 무너질 수 있는 몸으로 산다는 건, 절친했던 세상으로부터 절교 선언을 듣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미련이 남아 손에 틀어쥔 옷자락을 놓지 못하고 애걸하는 것이다. 아직은 날 버리지 마. 먹고 싶은 게 많단 말이야.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멸치국수를 한 입 집어넣자마자 역시나 구역질이 올랐다. 기침과 함께 시큼한 국물이 콧물로 쏟아졌다. 주인 아주머니는 사색이 되었다. 음식에 문제가 있냔 말에 엄마가 속상한 낯으로 내 등을 쓸어내렸다.
죄송해요. 우리 애가 항암치료 중이라서 잘 못 먹고 있어요.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이렇게 한 입도 못 먹고 버리네...
옆 테이블에서 사이 좋게 국수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있던 커플이 동시에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놀람과 당혹, 동정과 연민,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타인의 슬픔과 배려는 세상이 날 버리지 않은 대가로 삼켜야만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런 것들에 몸서리친단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나를 질책하려 한 것이다. 자, 봐라. 며칠 째 먹지도 못한 암환자인 주제에 네 고집의 결말이 어떤지.
하지만, 그 순간 주인 아주머니가 깔깔 웃으며 '아이고, 다행이네!' 라고 할 줄은 엄마도 미처 몰랐을 거다. 우리를 포함해 가게 안에 있던 커플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주머니를 보았지만, 그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더니 싱글거리는 낯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아니 난 또 음식이 잘못된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지금 못 먹겠으면 포장해드려요?
당혹감과 분노 어디 즈음의 표정을 짓고 있던 엄마는 아빠 것까지 포장해달라는 내 말에 결국 쓸어내리고 있던 등짝을 후려쳤다. 그 후려침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집에 돌아온 나는 오심 한 번 없이 포장해온 국수 한 그릇을 전부 비웠다.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겠다는 엄마의 불평과 잔소리를 반찬삼아.
그날 저녁 전화로 내 얘기를 듣던 K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다들 F와 T를 구분하잖아요, 언니. 근데 나는 그게 결국 같은 거라고 생각해.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반응하건, 문제에 집중해서 이성적으로 분석하건 결국 근본은 '자기'지 않을까? 언니가 예전에 그랬잖아요.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왜 니가 우는 거야'라고.
우리는 모두 그때를 기억했다. 말기 암 진단을 받고 나 스스로도 북받치는 감정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소식을 아는 이들마다 눈물바람으로 찾아와 신경이 몹시 예민해진 때였다. 나는 우는 K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괜찮아. 나 대신 네가 그렇게 우는데 어떻게 내가 안 괜찮을 수 있겠어.
K는 아픈 나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없을 때의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어서, 무서워서 그렇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슬픔을 나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내가 허락하기 전까진 함부로 슬퍼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그 정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 눈에는 언니가 아주 건강한 암환자처럼 보였나봐요.
아니, 국수집 아주머니가 본 건 응급실에서 갓 퇴원한 비쩍 마른 수척한 낯빛의 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박적으로 식기를 닦고 있는 엄마를 향한 내 눈빛과, '항암치료'라는 얘기에 움츠러드는 어깨 역시 보았을 테다. 또는 국수 한 젓가락 삼키지 못하고 남들의 구경거리가 된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었을지 모른다.
나는 K와 두 시간 넘게 수다를 떨다 엄마 잔소리에 전화를 끊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 꾸물거리고 있자니 이제야 퇴근한 아빠가 엄마의 하소연에 대충 맞장구 쳐주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애한테 다행이라고 하더라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쟤는 속도 없이 당신 것까지 포장해왔다고요.'
한참 얘기를 들어주다 씻고 나온 아빠는 내 방에 들어와 막 잠이 든 내 어깨를 토닥였다.
딸. 오늘 잘 먹었다면서.
응.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었어. 나는 잠결에 속으로만 대답했다.
잘했다.
응. 그렇지. 나 잘했어.
역시 속으로만 대답했지만 상관 없었다.
국수 한 그릇에 내 배가 부르다는 것. 당신께는 그거 하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