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네가 피흘릴 때 같이 울고 있는 자

언제나, 어디에서나

by 처녀치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임님은 교회 안 다니세요?


예정되지 않은 병가를 하루 이틀 더 쓰고 난 다음이면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미묘해진다. 나는 신주임 손톱에 커다랗게 박힌 일파츠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맨들맨들한 손톱을 숨겼다.


나중에 관심 있으시면 같이 교회 가요. 거기에도 암투병 하시는 분들 꽤 계시거든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말기 암환자를 직장 동료로 둔다는 건 주머니에 바늘 하나를 넣고 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테다. 그러니 나는 사람들이 내게 어느 정도의, 내일 당장 숨이 넘어가더라도 그들 스스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 익숙한 편이었다.


그렇게 동떨어진 외딴 섬이 되어가는 암 환자의 삶이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바로 종교였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외삼촌이 교회를 통해 새사람이 된 것을 계기로 외가 쪽은 대부분 교회를 다녔다. 아빠는 불성실한 천주교인이었고, 엄마는 독실한 외할머니를 따라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찬송가도 불렀지만 부처님 오신 날에는 꼭 절에 가서 연등을 밝혔다. 내가 태어난 날이 그 해 사월 초파일과 겹친 탓이란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직전, 엄마는 그때 이어진 몇 개의 인연으로 경상북도 봉화라는 낯선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동안 영험하다는 교회로 성당으로 목줄달린 개처럼 끌려 다녔던 나는, 끝내 마지막이란 약속을 받고 나서야 이름 모를 스님과 엄마를 따라 길도 나지 않은 산등성이를 올랐다.


썩은 것이건 끊어진 것이건 엄마에게는 어떤 동아줄이라도 필요한 시기였다.


안개가 자욱한 숲을 한참 오르니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면서 발 아래로 자욱한 구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치 은둔고수의 은신처 같은 암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이런 곳에 어떻게 집을 지었을까. 감탄도 잠시, 낮고 소박한 처마 밑에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세차게 내리붓는 여름 장맛비는 오후가 될 때까지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아, 차만 한 잔 얻어마시고 내려갈 계획이었던 우리는 뜻하지 않게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씻는 건 어찌하냐는 물음에 스님은 건물 뒤편을 가리켰다. 빗물 고인 커다란 고무다라이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송사리들을 발견한 엄마는 결국 목욕을 포기했지만, 나는 머리를 감고 깨끗하게 양치까지 했다.


불상 앞에 낡은 이불이 깔렸다. 일곱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금세 얇디 얇은 종이문 너머로 스님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는데, 나뭇잎을 때리는 빗줄기 소리, 쾌쾌한 이불 냄새, 물비린내 섞인 향내 속에 나는 한참 잠을 이루지 못다.


촛불에 비친 부처님 눈은 허락없이 들어앉은 이방인을 탐탁잖아 하는 듯 보였고, 나는 한참 눈싸움을 하다 얼마 안 가 항복을 선언했다. 우리 엄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시기는 한데요. 일부러 작성하고 눌러앉은 건 아니니까 이번만 봐주면 안 될까요?


설상가상으로 탱크같은 모기소리에 경악하며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는데,


엄마 어렸을 때는 심부름 한다고 혼자서 이런 산도 한 두개 넘었어.


빗소리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섞, 나는 눈만 내밀어 엄마를 보았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았겠니. 정신차리고 보면 벌써 달이 떴지. 그 시절엔 전기도 없어서 달빛에 의지해 길을 찾아가야 했거든.


나는 멧돼지를 만나지 않았느냐 물었고, 엄마는 외삼촌을 업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적 있지만 큰 소리로 내쫓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외할머니네가 파 농사를 크게 지어서 파 밭이 보이면 집에 다 왔다 했지. 봄에는 논두렁 양쪽으로 파꽃이 흐드러졌는데 그게 달빛에 비치면 사방이 꼭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았어.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아마 이 광경을 죽을 때까지 못잊겠구나.


피로가 묻어나는 조곤조곤한 음성은 한 밤중 펼쳐진 파밭처럼 그저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하여, 쩐지 조금 눈물이 났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던 날엔 커다란 구렁이가 내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지. 엄만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너는 기억도 안 나지? 며칠 내내 외할비가 보고 싶다고 등에 업혀서 악다구니를 쓰던 네가 울음을 뚝 그치더라니까. 아이고. 아이고. 놀란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서 곡을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한겨울에 구렁이라니, 흔치 않은 일이었지.


강박적이리만큼 '죽음'과 관련된 주제를 꺼내지 않던 엄마의 목소리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순간 나는 기이한 낯설음과 그리움, 그리고 서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송아지를 구해낸 용감한 소녀와, 성황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다 첫사랑을 만난 수줍은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 품속을 파고들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부처님 눈이 더는 무섭지 않다고 생각될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새벽 텃밭에서 뜯은 상추와 모닥불로 끓여낸 된장찌개를 아침으로 먹은 뒤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나는 하루를 꼬박 앓았다. 꿈 속에서 는 커다란 절벽을 마주보고 슴을 치며 울고 있었는데, 눈을 뜨자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이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울지 마라. 아가.


스님 말이 네 병이 나을 징조래.


그 말을 엄마도 나도 믿지 않았만,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로도 아주 가끔 나는 그 날을 떠올렸다. 불이 일렁이던 작고 허름한 골방, 내리붓는 여름비 위로 얹어지던 단한 음성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암을 포기하겠다는 내게 엄마가 악을 지를 때도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괜찮다. 다 지나간단다. 아가.


그때마다 나는 만약 신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놀라운 축복이나 구원은 아니었으나 이따금씩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눈 쌓인 창가에 비치는 크리스마스 불빛에 숨이 막힐 정도로 마음이 빼앗겨버리는 것처럼,


여름밤 내도록 낯설지만 그리운 음성이 고요하면서도 단단하게 삶을 읊어주는 것처럼,


그런 때마다 나는 믿지 않는 어딘가의 신이 아주 조금은 내가 가여워 깐 품어주 오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이 부칠 때마다 따뜻함과 그리움으로 나는 숨 쉬노라고.


그거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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