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동네 카페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언제나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는 어떤 ‘한 사람’의 자살의 이유를 대화 주제로 삼고 싶지 않다. 그의 개인사를 내가 어떻게 알고 말하겠나.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슬픔만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일인 것 같다. 이럴 때는 차라리 그저 사회 전체적인 자살’들’을 숫자로 바라보는 것이 뭐랄까 도덕적으로는 안정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잘못되는 데에는 어디엔가 사회적 요인이 있다는 것이 내 관심사이다. (전체주의적이거나 구조결정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다 사려깊고 무게있게 말하고 싶다. 성급하게 단정짓고 싶지 않고 보다 깊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론이 현실을 반영했으면 하지, 현실을 이론으로 환원시키고 싶지 않다.
오늘 본 어떤 이들은 무엇이 옳은지 지도해줄 어른이 없기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철학의 빈곤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검색창에 ‘베르테르 효과’ 따위를 검색하고 있다. 무언가 원인을 말하고 싶을 때 가장 쉽지만 얕은 방법은 어디선가 들은 개념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누군가 탓할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쉬운 생각들, 짧은 생각들과 감상들, 설명의 욕구들은 넘쳐나지만, 긴 생각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의 행위는 오로지 심리적 요인으로 환원되는가? 가치란 무엇인가? 사람은 가치를 어디에서 어떻게 가져오나? 가치가 곧 행위성인가? 행위의 공허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어디를 바라보게 되는건가? 성찰이 모자라서인가 넘치기 때문인가? 우리는 동일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긴 한 것인가? 종교성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럼에도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의 단순한 생각이라도 깊게 파고들면 이와 같이 끝없는 질문들과 싸워야한다.
하물며 생각이 경험적 사실인지 보이기란 더 어렵다. 사람들은 감상을 쉽게 말하고는 흔히 정당한 이론인 것처럼들 생각한다. 이 생각이 싫다. - 특히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이런 생각들은 더 심해진다.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틀렸을지를 걱정하지 않는다. ‘내 말이 맞는 걸까, 어떻게 알 수 있지’라는 내 생각이 바보처럼 느껴질만큼. 자살의 설명이 그렇게 쉽다면 뒤르켐이 ‘자살론’은 뭐하러 썼겠는가? 한 편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에 몸을 불사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이렇듯 얕은 생각들을 진리인 것처럼 믿고 있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소위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얕은 수준의 논의를 할 때이다. - ‘반일 종족주의’는 몰이해의 전형이다.-
지금도 자살에 대한 수많은 조언과 감상을 목격하고 있다. ‘조언을 해주고 싶겠지만, 그냥 입 닫고 있으라’는 말이 그냥 잔소리를 듣기 싫은데서 나오는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많은 조언들이 개인들의 제한된 경험과 상상력에서 나오는, 그저 본인의 설명의 욕구로 인해 만들어진 감상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게 무슨 소용이겠나. 당장 거기에서 살아 움직일 이유를 못 가져올텐데. 어떨 때는 개인적 감상을 나열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식을 알려줄 순 있을지언정, 조언을 해주는게 가장 두렵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현실의 편린을 날카롭게 포착하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어떤 위로와 응원의 책들보다도 그게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정말 자살이라는 현상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감상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살을 그만두라고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 명을 살리는데에는 위로와 상담이 절실하다. 하지만 한 명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살이 반복되는 것이긴 한지,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인지 이유를 찾고 싶다. 어쩌면 그게 더 많은 사람을 살릴수도 있으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생일이 같았기 때문에 장난삼아 생일마다 같이 축하를 빌던 연예인이 둘 있었다. 이제 한 명은 생일이 아니라 기일을 기억해야 한다. 나이가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나보다도 어린 사람이었는데. ‘살릴 순 없었을까’. 분노란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생각할 수록 화만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