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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Jan 01. 2021

[30she] Good bye, 2020

나이 먹는 거 지겨워



지금은 2020년 12월 31일 밤 11시경. 아마 이 글을 다 쓰고 발행할 시점에는 2021년이 되겠지. 2021년에는 브런치에 글을 더 열심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스타트를 이 글로 끊어보려고 한다. 2020년에는 진짜 한 해 동안 일어난 게 맞는지, 여러가지 굵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는데 그것들을 1년 동안 겪어내서 그런가 1년 전의 나와 지금 내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원래 한 해 회고는 인스타에 짧게 하고 말았는데 올해는 아무래도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서 그냥 짧게 정리해버리기엔 아쉬우므로 일어났던 이슈마다 길게 한 번씩 써보는 것으로.. 쿄쿄




이사했다


직접 설치한 베란다 등, 커튼, 직접 리모델링한 욕실. 사실 페인트도 칠하고 다했는데 사진으로 담기 어려움.


사실 원래는 이사할 계획이 없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 조금 더 살 생각이었는데, 이전 집주인이 곧 건물을 허물고 새로 올릴 생각이 있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이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건물 허문다고 해서 급하게 이사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쫓기듯 이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집을 알아보려니 정말 스트레스도 많았고 전세로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난 예정에 없던 이슈가 내 인생에 일어나는 게 정말 싫다.. 스트레스를 겁나 받아가면서 어찌저찌 우여곡절 끝에 작은 아파트로 이사올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오래됐고 관리가 하나도 안 돼 있어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던 집이었기에 내가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집주인과 상의해서 욕실 리모델링, 도배 장판을 다 내 사비로 하기로 하고 조금 싸게 계약 완료함.


당시 재직하고 있던 라이커스의 팀원들과 함께, 가장 하고 싶었던 욕실 리모델링을 했던 게 정말 기억에 남는다. 을지로 가서 직접 타일 찾아보고 거울이며 욕실장같은 것들을 골랐고 세면대도 사이즈 맞춰 고르느라 고생했다. 변기도 바꾸고 싶었는데 저만한 사이즈의 변기를 찾아내기가 힘들어서 깨끗하게 닦고 소독하고 다시 설치했다. 옛날 거라 변기가 작은데 작은 변기가 잘 안 나옴.. 여튼 욕실 전체 다 철거하고 타일 덧방 + 세면대 설치, 욕실장 설치, 천장까지 새롭게 붙이고 거울부터 자그마한 욕실 악세사리들까지 다 붙이고 나니 진짜 도배 장판은 사람 할 일이 못 될 것 같았다. 도배 장판은 결국 사람 부름 ㅠㅠ ...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니여. 내가 라이커스에서 기술 경력을 더 쌓았더라면 나도 전문가가 될 수 있었겠지만, 역시 나는 머리로 일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하는 기획자이지 현장에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사갈 집 리모델링 완료.





새 연애


20살부터 2020년까지 받은 꽃보다, 이 연애를 하며 받은 꽃이 더 많음.


누군가와의 한 시절이 끝났다. 연애가 끝나면 시절이 갔다는 느낌이 들어 좀 씁쓸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또 다른 시절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했던 연애와는 아주 다른 연애여서 적응하는 중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졌던 시기에 호다닥 국내여행


절친과 목포-광주 / 애인과 함께한 제주도


2019년 말부터 절친과 다낭을 가겠다며 여행 일정 짜고 비행기 티켓 예매하고 숙소까지 완벽하게 다 세팅해놨었는데...! 그랬는데 망할 노므 코로나 때문에 너무 걱정돼서 3월 일정을 5월로 바꾸어 보았다. 그런데 5월이 되니 하늘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대신에 국내여행으로 바꾸어 목포-광주를 투어했다. 그녀와 둘이 여행 가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서로 여행 스타일 맞추느라 서로 조금씩 고생했다. 나는 느슨히 움직이는 타입, 그녀는 온갖 군데를 빡세게 돌아다니는 타입이다. 그래서 나는 빠릿빠릿한 그녀에게 불만 없이, 그녀는 중간중간 나를 위한 쉬는 시간을 만드는 것으로 조율 아닌 조율을 했다. 덕분에 정말 기억에 남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같이 봤던 일몰, 해가 지고 내려오다가 길을 잘못 들 뻔 했던 경험, 목포 밤바다를 보며 먹었던 꼬득꼬득한 해산물들이랑 광주에서 우리 엄마아빠랑 같이 보낸 시간까지. 더 낡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가끔 한 번씩 이렇게 다녀볼 수 있게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애인과 갑작스러운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생각지 않았는데 어쩐지 그때가 아니면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그이의 장염........ 첫째날 먹은 전복이 잘못됐는지 나는 괜찮았는데 그이는 장염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다...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나를 위한 인생샷을 찍어주겠다며 짐을 이고지고 카메라를 이고지고 나를 여기에도 앉히고 저기에도 앉히고 세우고 걸어라 웃어라 돌아봐라 아주 주문이 많았다. 덕택에 인생샷을 여러 장 건지긴 하였으나 어쨌든 그이는 장염에 걸려 개고생했고 과연 남는 것이 무엇인가 나에겐 인생샷, 그이에겐 장염을 남긴 여행ㅋㅋㅋㅋㅋ


그 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 맛집도 못 가고 카페도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는데, 이제는 집 앞 카페도 못 가고 아주 여러모로 속상허다.




이직했다


꽁냥꽁냥 일한다


인연이란 건 정말 신기하다. 이직하게 된다면 이 곳들이 아닐까 생각했던 곳들이 아니라,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다른 것보다도 애자일 밴드를 활용한 협업 문화가 정말 눈에 띄었다. 인하우스가 마치 에이전시처럼 일을 하고 있음. 내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을 꼽아 보자면 열 손가락을 두세 번은 접어줘야 한다. 연혁은 오래되었지만 스타트업이라고 꼽을 만한 스탠스와 방향성이 매우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브랜드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시기에 맞닥뜨린 딱 그 시점에 입사하게 돼서 정말 좋다.


무엇보다도 솔직하고 선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나머지 회사 이야기는 회사 브런치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아빠, 엄마, 류니르미다우니, 그리고 내 인생의 기적들인 내 조카들


올 한 해 아프지 않고 건강히 지내주어서 너무나도 감사한 가족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사랑하는 루다와 승우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 아빠가 알려주지 않아도 둘이서 손 잡고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갈 수 있다. 물론 지들 아빠가 등 뒤에 있음을 믿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만.. 여하간 유모차 안 타고 길 안 물어보고 잘 걷는다고 한다. 가끔 반차 쓰고 애들 하원시키러 가면 둘이서 고모! 하고 달려나오는데 그 모양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휴가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이 아기들이 노는 모양을 물끄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진짜 빨리 간다는 것을 느낀다. 어른들이 아이를 낳아 길러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마 느리면서도 빠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느낀다. 엄마아빠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고, 무한한 사랑을 받아온 내가 우리 조카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다행이다. 아이들 엄마아빠가 해 줄 수 있는 몫과 이모가 해 줄 수 있는 몫이 있을 텐데 나도 고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있겠지. 그게 지갑.. 지갑을 여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 아무튼 비혼주의자이자 비출산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내가 가질 일 없는 아이라는 존재들이 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물론 내 조카들에게도 결혼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은 고모가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




엄마가 산문집을 냈다



엄마는 단편집 한 권을 내고선 그 후로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오랫동안 글쓰기를 미루어 두고 살았다. 나와 동생이 앞가림할 만큼 자라고 나서야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래 글을 놓았던 만큼의 간극을 좁히기 어려워하던 모습을 늘 곁에서 지켜보던 입장에서 엄마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 번 책을 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교정 보느라고 계속 여러 번 읽어봤는데, 책으로 나와서 읽으니 또 다른 울컥함이 있다. 내가 엄마에게서 들었던, 나만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던가 여러 감흥들이 산문집 안에 조용히 고여 있었다. 환갑이 다 되었는데도 글을 놓지 않는 엄마를 존경한다. 어떻게든 자기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엄마의 글을 사랑한다.




덕질은 인생을 윤택하게 한다


퀸덤 / 싱어게인


나는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몇 년 전에는 팬텀싱어를 보면서 그런 열정을 느꼈었는데, 2020년에는 퀸덤과 싱어게인에서 그런 열정을 느꼈다. 퀸덤에서는 원래도 좋아했던 마마무 뿐 아니라 오마이걸과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걸그룹에 빠져버렸고, (지금은 보류 중이지만) AOA의 새로운 매력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러블리즈가 왜 러블리즈인지도 알았고 박봄은 건재하다는 사실도. 그 중에서도 특별히 사랑하게 된 걸그룹은 오마이걸이다. 낮은 순위를 받아 울었으면서도 다시 웃고 떠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우린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하는 단단한 자신감과 끈끈한 연대. 그리고 데스티니 커버 무대로 보여준 실력이 정말 감동스러웠다. 퀸덤은 정말 오마이걸의 성장 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마지막 곡으로 냈던 게릴라는 아직도 최애곡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혁명군, 혹은 바다로 나서는 그리스 로마 여신들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도 너무 사랑하는 무대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반짝, 빛날 때 나도 모르게 홀려들어가는 기분을 두 번이나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내 감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싱어게인을 통해 알게 된 30호 가수, 이승윤(밴드 알라리깡숑의 보컬)이 내 올해 마지막 덕질을 장식했다. 와.. 브로콜리 너마저 이후로 진짜 거의 한 십몇년 만에 다시 인디밴드를 사랑하게 됐다. 곡마다 다른 색깔을 낼 수 있는 건 보컬 혼자만의 능력은 아닐 것이다. 그런 협업이 잘 되는 모습도 좋고, 곡마다 다른 스타일로 부를 수 있는 변화무쌍한 모습도 좋다. 이 장르가 뭔가요, 하고 MC 이승기가 물었을 때 "장르는 30호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신감과 충만한 자존감도 너무도 멋지다. 앞으로 이 사람이 음악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긁어내는 것 같은 창법도, 매끄럽게 끌어나가는 고음도, 씹어삼키는 것 같은 발음도 모두모두 이 사람만의 스타일인 것이 너무너무 멋있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이 돼야지. 어떤 것을 하든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지. 싱어게인에서 불렀던 치티치티뱅뱅도 미친 노래였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우주 like 썸띵 투 드링크]임. 기회가 된다면 꼭 라이브를 들어보고 싶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글쓰는농장, 동서남북, 나비파, 오늘부터팀장1일차


올 한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그나마 글쓰는 농장이나 나비파는 띄엄띄엄 얼굴 볼 수 있었는데, 동서남북 내 대학 친구들은 이서나오가 둘째를 낳는 바람에 바깥나들이가 어려워지면서 넷이 보기 정말 어려웠음 ㅠㅠ 그나마 언택트 송년회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십오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흐름으로 드립치는 우리들 정말 사랑한다... 글쓰는 농장이 있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오팀 스터디가 있어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비파가 있어서, 사회친구들이 이렇게도 오래 서로 아낄 수 있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고. 여러 모로 너무도 아름답고 따스한 인연들이다.


만나진 못했지만 언택트 모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임 ㅠㅠ 우리나라 인터넷 최고예요 ㅠㅠㅠㅠ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해하면서 2020년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



스물다섯 살에 쓰고 싶었던 소설을 드디어 마무리했다. 오래된 부채를 청산한 기분이다. 장편을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뒷심이 없어서 장편까지는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끌어갈 수 있는 힘이 중편까지밖에 아닌 듯 하다. 여하간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추억은 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일이 헛된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죽은 사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져 가는데 어딘가에 남아 있는 선명한 빛망울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순간의 그 목소리같은 것들은 남아 있고 죽지 않아 두둥실 떠오른다. 그것이 남은 이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사실 글쓰는 농장에서 [올해 쓰던 소설 마무리짓고 응모하겠다]고 공약 걸지 않았더라면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공약을 내세워 놓고 못 지키면 너무 쪽팔려하는 사람이어서... 과정과 결과가 어찌 되었든 한 편을 써냈고 그래서 어쩐지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도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찾아냈다는 사실이 가장 감격스러운 2020년이었다.




돌이켜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꺼번에 태풍처럼 밀어닥쳤다가 빠르게 사라진 많은 것들이 2020년의 나를 조금 더 자라게 한 것 같다. 사실 나이 먹는 거 이제 지겹지만 그렇다고 옛날이 그리운 것도 아니다. 시간이 둘러둘러 쌓이면서 단단해지고 있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니 2021년에도 잘 부탁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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