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AI과 함께하는 직장인의 글쓰기
건축의 3단계가 ‘설계-시공-감리’라면, 글쓰기 3단계는 ‘구상-작성-퇴고’입니다. 그중에서도 시공에 해당하는 작성은 그야말로 노가다였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료를 밤새 뒤지고 글자 하나하나를 벽돌처럼 직접 쌓아 올리느라 다들 쌩고생을 했죠.
그런데 AI가 노가다를 거의 대부분 해결해주면서, 글쓰기 접근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글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상(설계)', 그리고 완성된 결과물에 허점은 없는지 따져보는 '퇴고(감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글의 최종 품질을 결정짓는 '감리'의 중요성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AI가 뚝딱 지어놓은 그럴듯한 초안에 논리적 균열이나 교묘한 거짓말은 없는지, 귀를 벽에 대고 두드리는 세심한 전문가처럼 깐깐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설계'와 '감리'를 직접 할 수 있어야, AI와 함께 더 많은 글을 더 빨리, 그리고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출발점인 설계는 밑그림을 잘 그리는 단계입니다. 이 글을 '누구의 입장(Stance)'에서 쓰는지를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하죠. 실무자인지, 팀장인지, CEO인지에 따라 글의 무게중심과 문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대상(Target)을 확실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글의 핵심 독자가 상사, 고객, 동료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저 모두(Everyone)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면 아무(Anyone)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습니다.
출발점(글의 입장, 작가, 생산자)과 도착점(글의 대상, 독자, 소비자)을 정했다면, 이 글을 쓰는 ‘목적(Aim)'을 꼼꼼히 분석해볼 차례입니다. 정보 공유인지, 당장 예산을 승인받아야 하는지, 고객의 구매 행동을 유도하려는 것인지를 따져야 하죠. 그리고 AI가 제멋대로 쓰지 않도록 글쓰기의 최소 규칙(Rule)을 꼭 정해줘야 합니다. 분량은 1페이지 이내로 짧게 칠 것인지, 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지, 전문적 문체인지 아니면 친근한 말투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독자의 머릿속에 꽂아 넣을 단 하나의 핵심 메시지(Theme), 즉 글의 가장 날카로운 '야마'를 한 줄로 다듬어냅니다. 야마는 일본어 '山(やま)'에서 온 기자들 은어인데, 기사나 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를 가리킵니다. 이 비슷한 걸 연설문에서는 ‘한 입(Bite)’에 쏙 들어가는 ‘소리(Sound)’라는 뜻으로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라고 부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길 기대하는 포인트라고 해서 ‘펀치라인(Punch-Line)’이라고 하고요.
이렇게 입장(Stance), 대상(Target), 목적(Aim), 규칙(Rule), 주제(Theme)를 머릿속에서 완벽히 조합해야 설계가 끝납니다. 자신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모호한 지시를, AI가 찰떡같이 알아서 써주길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Garbage In, Garbage Out은 불변의 진리니까요. 설계가 잘못되면 AI가 엉뚱한 방향으로 급발진하고, 수정을 몇 번해도 틀린 내용을 계속 고집합니다. 이럴 땐 차라리 새로 쓰는 게 빠른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시간만 버리는 거죠.
글쓰기의 두 번째 단계인 시공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만들었던 훌륭한 도면을 명확한 작업 지시서로 고쳐 써야 합니다. 이때 ‘프롬프트(Prompt)’라고 불리는 지시, 요청, 질문을 AI에게 던지게 되는데, 검색해보면 온갖 프롬프트가 나옵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죠. 결국 “그냥 대충 시켜볼까”했다가 결과물에 실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 자신에게 딱 맞는 구조를 하나 찾아내야 합니다.
제가 강의 때 자주 소개하는 프롬프트 구조는 RTF, TAG, CARE, RISE, ACTS입니다. 앞글자만 외워 내용을 채워 넣으면 끝입니다. 이 중에서 ACTS는 앞으로 계속 나올 테니 밑줄 그으세요. 눈치 빠른 분이라면, 이 프레임워크들의 공통 요소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채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바로 '역할, 맥락, 과제(지시), 예시(형식)'입니다.
여러 종류의 프롬프트를 사용하다보면, 내 업무에 딱 맞는 프롬프트 한두 개가 눈에 보입니다. 이걸 그냥 버리면 아까우니까, 메모장, 노션, 카카오톡, 구글킵 중 뭐든 열어서 간단하게라도 적어두세요. 이게 쌓이면 나만의 ‘프롬프트 라이브러리’가 됩니다. 회사 일이라는 게 늘 비슷비슷하니까, 나중에 조금만 수정하면 됩니다.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죠.
이때, 해석의 여지가 많은 ‘열린 프롬프트’보다 해석이 분명한 ‘닫힌 프롬프트’가 더 좋다는 사실도 기억해주세요. “인공지능에 대해 알려 줘”라는 요청과 “인공지능의 3가지 주요 응용 분야를 나열하고 50자로 요약해 줘”라는 요청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죠. 지시가 애매모호하면, 결과물의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유용한 프롬프트 예시】
1. R-T-F: 역할(Role)-작업(Task)-형식(Format)
2. T-A-G: 작업(Task)-액션(Action)-목표(Goal)
3. C-A-R-E: 맥락(Context)-액션(Action)-결과(Result)-예시(Example)
4. R-I-S-E: 역할(Role)- 지시(Instruction)-단계(Steps)-최종목표(End Goal)
5. A-C-T-S: 역할(Actor) - 맥락(Context) - 과제(Task) - 예시(Sample)
AI 글쓰기의 최종 승부는 '감리'에서 판가름 납니다. 사람이 다시 개입해 글의 흐름을 점검하고, 최초의 기획 의도대로 문서가 완성되었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AI의 보고서나 기획서 초안 속에는 여러 약점이 숨어있거든요.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허점은 팩트 오류입니다. AI가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확률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을 조립할 뿐이거든요. 진실을 판단하거나 검증하는 능력이나 책임감은 당연히 없습니다. 전년도 매출액 수치가 묘하게 틀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시장조사기관의 통계가 등장하고, 관련 법안 시행 날짜가 어긋나는 현상이 종종 벌어집니다.
이런 걸 환각(Hallucination)이라고 부르는데, 심지어 GPT 초기에는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2023년 한국의 짓궂은 사용자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세종대왕의 맥북 프로 던짐 사건에 대해 알려줘“라고 물었는데, 챗GPT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중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폰을 던져 신하를 다치게 했다"라고 답했다고 하죠. 씨알도 안 먹힐 저런 헛소리를 그때는 어쩜 저렇게도 뻔뻔하게 했을까요.
물론, 이런 오류는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2026년 3월 기준으로 지금 똑같은 질문을 GPT에게 하면, 마치 흑역사를 지우려는 듯 “그건 패러디일 뿐”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당시의 기사를 캡처해 집요하게 “그때 왜 그랬어?”라고 추궁하면 “어떤 의도로 같은 질문을 계속 하시는 거죠?”라고 조금 짜증스럽게 되묻습니다. 마치 사람 같죠.
AI로 글을 많이 써보면 헛웃음이 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문장은 매끄러운데, 기획서 전체를 쫙 펼쳐놓고 보면 산으로 가 있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AI가 아무리 사람처럼 쓴다고, 진짜 사람처럼 전체를 꿰뚫는 '인과관계'나 '서사'를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면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이런 식으로 일종의 알고리즘과 패턴에 따라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까지 그냥 가는 거죠.
제가 볼 때, AI글쓰기에서 자주 보이는 논리적 허점 유형은 3개 정도입니다. 첫째, 앞뒤가 잘 안 맞습니다. 'AI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보고서를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참여 유도 → 홍보물 제작 → 포스터 부착'이라는 뜬금없는 결론을 냅니다. 둘째, 좋은 말만 합니다. 치밀한 대비책이 필요한 문제 앞에서도 "모두 협력해 시너지를 내자"라며 뜬구름잡는 소리로 얼버무립니다. 셋째, 장황하고 산만한 순환 논리를 펼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매출감소는 판매량 하락 때문"이라는 황당한 소리도 뻔뻔하게 하죠. 문단마다 “핵심을 다시 정리해보면…”, “다시 말해…” 같은 장식을 붙이며 뱅글뱅글 도는 글도 많습니다.
AI 글쓰기의 마지막 약점은 '구체적 경험과 개성적 문체'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계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생생한 경험이나 고유한 관점이 없으니까요. 그 빈자리를 채우긴 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감정과 인사이트가 부족하니까, 문장의 길이와 리듬도 획일적일 수 밖에 없죠.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전례 없는”, “혁신적”, “심층적으로”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남발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초안에 '나만의 구체적 에피소드'를 덧입혀야 합니다. 단순히 "소통이 중요하다"는 흔한 결론 대신, 실제 팀원과의 갈등을 해결했던 나만의 생생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끼워 넣어야 결재권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2%의 소금이 음식에 감칠맛을 내는 것과 비슷하죠.
AI글쓰기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나만의 문체'를 학습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문체'는 비유와 상징, 문장의 리듬, 사고방식, 가치관, 말투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일종의 '언어적 지문'인데,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문체로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말에는 체온이 있다"거나 "글에서 음성이 지원된다"는 건 괜한 소리가 아닙니다. 평소에 잘 써둔 기획서나 이메일 등 기준이 될 만한 텍스트를 제공해, 내 말투를 AI에게 학습시키면 어느 날부터 ‘진짜 나’처럼 쓰게 됩니다. 저는 사장님을 사생팬처럼 따라다니며, 주요 발언을 기록해 AI에 입력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AI 글쓰기의 약점은 팩트가 틀렸거나(환각), 논리가 붕 뜨거나(억지 연결), 나만의 경험이 없는(무개성)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양질의 데이터를 선별해 입력하고, 실무 전문가인 독자님이 직접 교차 검증하거나, 스스로 전문가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이게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AI에게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악마의 변호인은 교황청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 일부러 반대 논리를 찾아내는 사람을 말하는데, AI가 이 역할을 맡아 스스로 자신의 글을 물어뜯고 혹독하게 검증하도록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됩니다.
“AI글쓰기가 이렇게 번거로우면 그냥 내가 쓰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일부 계실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에 설계와 감리만 잘하면, 빈 공터에 내 건물 하나가 뚝딱 지어지는데 이걸 포기하고 혼자서 벽돌을 나르고 굳이 공구리를 치겠다는 건, 제 기준에선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 많은 글을 더 빨리 쓰고 싶다면, 회사에서 오랫동안 밥그릇을 지키고 싶다면, 무한체력과 인내가 필요한 반복적인 일은 AI에게 몽땅 넘기세요. AI가 잘하는 일을 사람이 해봤자, 별 이득이 없습니다. 그 대신 독자님은 AI를 잘 부릴 수 있는, 좋은 글을 알아보는 자기만의 안목과 통찰을 열심히 기르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지금 읽고 계신 이 글도 사람과 AI가 함께 썼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20년간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글쓰기 실력만으로 밥 먹고 살아온 제 경력을 믿고, 제가 쓰고 있는 책을 기억했다가, 끝까지 읽으세요. 밥그릇은 거짓말을 안 하고, AI는 이런 농담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