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쓴다, 말한다, 내 책을 낸다> 제3호
“글 쓴다”고 하니, 다들 바쁜데 왜 너만 신선 놀음하냐는 엉뚱한 말을 들었습니다. 왜요, 세상엔 그게 일인 사람도 있다고요. 장례식장에서 상주(喪主)보다 더 구슬프게 울어주는 사람도 있고, 이별을 대신 해주는 사람도 다 있는데, 글 쓰는 직업이 회사에 없을 이유가 없습니다. 좀 낯설게 느끼실 수는 있지만요.
스피치라이터가 쓰는 말의 주인은 그가 속한 조직의 리더입니다. 원장님, 사장님, 회장님, 장관님, 그리고 대통령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 그 분야에서 소위 정상에 선 사람들입니다. 제가 조금 가깝게 본 그 분들의 스케줄은 신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가끔은 땅콩이나 물잔을 내던지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자리에 앉아 ‘주민등록증’을 최고의 스펙으로 삼으신 거겠죠. 최근에는 직원들더러 엉덩이춤을 추라든가, 사랑한다며 장미꽃을 접게 하는 분도 생겼다고 하는데, 저는 존경심 가질 만한 분들만 모셔서 참 다행입니다.
그분들께서는 할 말이 있으셔도 시간 내기가 어렵습니다. 툭 하고 한 말씀 하시면 그게 글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잘 써봐!” 신기하게도 이걸 다들 잘 알아듣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잘 담긴 완성된 글을 빨리 준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일이 눈앞에 딱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해외 출장 중이셨는데 그쪽에선 낮이지만, 한국은 밤 11시였습니다. 5시간 후면 인천공항 내리실 테고, 사무실 오시면 8시쯤입니다.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고작해야 인저리 타임까지 최대 9시간였습니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고 고쳐 쓰는 것까지 다 포함되어 있으니, 오늘 잠들기는 글렀습니다.
비서실 문자를 받자마자, 홍보실, 기획처, 현업부서, 연구소에서 카드빚 독촉하듯 전화가 쏟아집니다. “그거 들었죠?” 긴급회의가 자정에 소집됩니다. 운동화, 추리닝, 눌러 쓴 모자, 다들 아무렇게나 달려온 게 틀림없습니다. 뭘 어떻게 쓸지 회의(會議) 하느라 30분이 아깝게 지나갈수록, 저는 점점 더 초조하고 회의(懷疑)적으로 변합니다. ‘과연 이걸 시간 내 쓸 수 있을까’ 불안감이 가스처럼 대장에 가득 차면서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은 바늘처럼 따갑고 귀가 윙윙 울립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글쓰기 전원을 꽉 누릅니다.
글이라는 게 말로는 참 쉽습니다. 다들 입으로만 그러지 마시고, 한 편씩 써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 하면 저 잘리겠죠?) “일단 쉬고 계세요. 제가 어떻게든 초안 써볼 테니, 새벽 6시에 다시 뵙죠.” 안쓰러움과 걱정, 불신과 희망이 제 손가락 위로 동시에 쏟아집니다. “힘내, 아침에 보자고!” 이런 말이 고맙기도 한데,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항문에서 올라온 신물이 목구멍에 턱턱 걸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마침표 하나도 대신 찍어 줄 수 없는 게 바로 글쓰기다”라던 조정래 작가의 탄식이 가슴에 턱하고 박힙니다.
이럴 땐 평소 수집해둔 자료들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국내외 산업현황, 선진국 사례, 정책보고서, 연구소 통계, 전문가 인터뷰, 관련 서적을 주욱 돌아봅니다. 깊이 들쳐볼 시간은 없습니다. 어디 뭐가 있었고, 그게 지금 여기에 들어와야 한다는 걸 빠르게 생각해 내야 합니다. 제가 새롭게 만든 건 없지만, 만들어진 건 모두 새롭습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하신 강원국 청와대 前 연설비서관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평소 물고기를 잡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찌고 굽고 삶고 회를 칠 줄 알아야 합니다. 손님 막 들이닥치는데 주섬주섬 낚싯대 꺼내선 안 됩니다.
이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그분 말씀을 평소 모아 둔 ‘명언록’입니다. 그걸 보며 해골 같은 초안에 숨결을 불어 넣습니다. 경영회의록과 행사 인사말 녹취록은 물론이고, 술자리 농담까지 키워드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요새는 페이스북 포스팅과 친구들과 주고받는 댓글까지 모두 수집합니다. 이게 제 영업비밀입니다.
저의 독특한 습관은 ‘청와대 연설자료실’을 더 살펴보는 겁니다. 때에 따라 핫 트렌드나 신세대 농담을 적절하게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물오물해서 겨우겨우 글을 씁니다. 동이 트고 글이 모습을 갖추면, 꿈결 속에서 회의가 다시 열립니다. 초안이 그분께 가 닿고 나면, 피드백이 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입니다. 이후 계속 고쳐야 하겠지만, 마지막 퇴고는 항상 그분의 몫입니다. 모두가 함께 만든 말씀이지만, 그 말씀의 주인은 그분이니까요.
제가 쓰는 글은 문인(文人)들의 ‘작품(a literary work)’과는 다릅니다. 처음엔 멋진 말만 쓰려다가 혼이 몇 번 났습니다. 저는 글(Writing)을 쓰는 게 아니라, 글로 일(Job Business)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여러 부서가 복잡하게 엉켜 있고, 2만여 직원과 어쩌면 5천만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주는 중요한 일입니다. 말씀은 그분과 바로 연결됩니다. 혼자서는 제대로 할 수 없고, 혼자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게 ‘스피치라이터(Speech Writer)의 일’입니다. 그저 이미지만으로 고상하다고 하시는 분도 계신데, 뭘 모르는 말씀입니다.
가끔은 ‘글 쓰는 자판기’가 된 것 같다고 한숨 섞인 투정을 부리곤 합니다. 그건 환절기마다 걸리는 작은 감기 같은 거고, 저에게 글 쓰는 건 여전히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그것이 큰 수정 없이 통과되었을 때 안도감과 희열이 온 몸을 감쌉니다. ‘아, 이제 또 하나 썼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실론티 한 잔을 마십니다. 제 자신에게 주는 나름대로의 작은 보상입니다. 제가 쓴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귀한 시간을 벌어드리고, 그분 최고의 모습을 찾도록 돕습니다. 그걸 잘 못하면 제 밥벌이가 어려워지기도 하고요. 스피치라이터가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자격증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어렵고 전문성 있는 일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그게 있으면 벌써 땄겠죠.
아, 아까 쓰던 그 글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홍보, 기획, 연구 세 파트에서 보다 전문적인 의견을 주면서 글이 처음보다 단단해졌습니다. 엉망이라면 바로 불호령이 있을 텐데, 삼십 분 넘게 조용합니다. 오후 두 시, 그분께서 일부 고치셨지만 오케이 하셨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휴, 다행’ 제가 조금 더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피치라이터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꽤 치열합니다. 기업도 이런데 청와대 스피치라이터는 얼마나 더 힘들까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절로 나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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